한희정

오선지와 스크린 위에 흐르는 노래

오선지와 스크린 위에 흐르는 노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2009에서 익숙한 얼굴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영화 〈춤추는 동물원〉에서 주연배우이자 음악감독으로 변신한 한회정이 그 주인공이다. 2003년 발표한 밴드’더더’의 4집 앨범 이후 홀로 음악 활동을 해오고 있지만 한희정은 아직도 ‘더더’라는 이름으로 설명되곤 한다. 한국 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 상에 선정된 바 있는 더더 4집의 철 지난 기억 때문인지, 나지막이 감성을 두드리던 인디 밴드 푸른 새벽’ 속 그녀를 혼자만 간작하고 싶은 욕심 때문인지. 아마도 솔로 앨범을 발매하고 온전히 자신만의 목소리를 들려준 그녀에게 아직 기대할 것이 더 있어서일 것이다. 대중음악의 메이저와 인디 산을 자유롭게 유영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음울한 음악을 선사하며 싱어송라이터로 자신만의 독별한 영역을 확보한 한희정, 대중의 기대에 그녀는 영화 〈충주는 동물원> 이라는 또 다른 결과물을 들고 왔다. 2009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경쟁 부문에 진출한 이 영화에서 한희정은 밴드 ‘동구스’의 몬구와 함께 주연과 음악감독이라는 두 역할을 맡았다. 온전히 다른 분야에서 여전히 자신의 소리를 들려주는 한희정이 오선지에서 스크린으로 옮겨 적은 멜로디에 대해 이야기했다.

[Numero] 특유의 내성적인 이미지 때문에 영화를 찍는다고 했을 때 약간 의아했다.

[한희정] 일단 음악영화라는 것이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그리고 단순히 배우로서 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 삽입할 곡을 스스로 만들고 부른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음악은 혼자 만들지만 그 과정은 영화의 영향을 받는 협업인 것이다.

영화의 사놉시스와 스틸 컷을 보니 본래의 한희정과 비슷한 부분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 감독님과 인터뷰를 한 달간 진행했다. 내가 연기를 해본 경험이 없으니 만들어진 캐릭터에 나를 끼워 맞추기보다는 실제의 내 캐릭터를 십분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극 중 이름도 나와 같다.

아무리 스스로의 캐릭터를 살려 연기한다고 해도 음악 작업과는 다른 점을 많이 느꼈을 듯하다.

나에게 음악은 철저히 개인적인 직업이지만 영화 작업은 그렇지 않았다. 결코 혼자서는 만들 수 없다. 내가 만들고 싶을 때 만들면 되는 음악과 달리 영화는 정해진 기간 내에 어떻게든 완성해내야 했다. 한 달 반의 촬영 기간 동안 여러 사람과 함께 작업하고 호흡하는 것이 즐거웠지만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뮤지션으로서 연기로의 외도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내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랑을 연기해야 했지만 뮤지션을 연기하는 것이어서 부담보다는 설렘과 흥분을 안고 겁 없이 시작했다. 그러다 ‘배우는 대단한 직업이구나’ 하고 몸소 느꼈다. 촬영 전 연기 지도를 받았지만 역시 촬영 현은 내 생각과 많이 달라 어려웠다.

실제 뮤자션으로서 감독이 그리려는 뮤지션의 모습이 실제와 다르다고 느낀 적은 없나?

촬영 전 감독과 인터뷰 과정에서 일부분을 다듬었다. 물론 모든 영화가 100% 현실을 담아내지 않기에 다른 점도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감독의 입장에서 최선의 방식으로 의도를 전달하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고 창작자로서의 두 감독을 믿었다.

주연배우 둘 다 뮤지션으로 연기를 처음 하다 보니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을 듯하다.

영화의 내용이 뮤지션의 사랑과 헤어짐을 담고 있는 음악영화다. 수첩에 남자 친구가 해놓은 낙서를 보며 울어야 하는 신이 있는데, 그 낙서가 너무 재미있어서 웃음이 터진 적이 있다. 도저히 그 낙서를 보고 울 수가 없었다. 그 외에는 스케줄이 너무 힘들어서 NG 없이 한 번에 끝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연기한 게 에피소드라면 에피소드다.

영화의 음악감독으로 OST도 직접 만들었다. 어떤 노래인지 궁금하다. 또 영화 속의 어떤 장면을 염두에 둔 음악인지?

‘엘로디로 남아라는 곡은 연출 의도를 읽고 작업한 곡이다. 두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과정에서 영원히 변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것을 노래한다. 둘만의 아름다운 시간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노래는 최근 발매한 나의 EP(미니 앨범)에서도 들을 수 있다. 넬의 김종완 씨가 피처링한 새로운 편곡으로 실러 있다. 비교해서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춤추는 동물원>이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대상과 심사위원 특별상 후보에 올랐다.

나뿐만 아니라 두 감독님 모두 이번 영화가 장편으로는 첫 번째 데뷔작이라 내심 수상을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주목받고 여러 사랑이 고생한 보람을 조금이라도 더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음반, 공중파 라디오 DJ, 연기, 음악감독까지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것은?

단편영화 출연 제의가 들어오는데 좋은 작품을 만나 다시 연기를 해보고 싶다. 음악영화가 아닌 다른 소재로도 연기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에디터 | 최태형
포토그래서 | 이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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