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5년 12월
글/최태형 사진/박남규

‘스타트업 기업, 그중에서도 IT 기업의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에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 아이디어를 뒷받침할 핵심 기술? 질문을 받고 떠오르는 것을 말하라면 열에 아홉은 이 둘을 번갈아 대답할 것이다. 물론 남다른 아이디어와 높은 기술력은 어쩌면 스타트업 IT업체의 존재 이유 그 자체다. 그러나 질문은 다시 되짚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질문은 스타트업 IT업체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해야 살아남아 기업을 성공으로 이끌까 하는 핵심 역량을 묻는 것이다.

물론 딱 하나를 기업의 성공 요인으로 짚어 말한 순 없다. 하지만 한국 IT업계의 상황을 보면 기술 개발이 성공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알다시피 한국의 경우 몇몇 대형 업체가 IT 생태계를 잠식한 상태다. 작은 스타트업의 서비스를 이름만 바꿔 제공하는 업체를 찾는 일도 어렵지 않다. 스마트폰 GPS 신호를 바탕으로 가까운 배달 전문점을 연결해주는 서비스가 크게 늘어난 것이 그 예다. 게다가 이제는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는 메신저가 골목 상권인 대리운전 서비스까지 준비하고 있다. 이게 한국 IT의 현주소다. 여기에는 근본적인 IT 기술의 특성도 한몫한다. 아무리 독특한 서비스라 해도 흉내 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때문에 자본을 가진 기업이 마케팅을 통해 판도를 뒤엎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미 오래된 얘기지만 대형 포털 사이트 두 곳의 위상이 뒤바뀐 것도 비슷한 선례다.

사실 이런 우중충한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니다. 이미 업계 전체에 만성화된 이야기를 다시 문제 삼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기술만 있으면 성공할 거라 믿는 스타트업 IT업체의 기대도 어쩌면 무책임한 환상이라는 얘기다. 스타트업 IT업체도 결국은 사업체다. 기술이라는 손에 든 사탕을 떨어뜨리지 않고 지켜낼 역량이 필요하다. 어쩌면 가장 스마트하고 재빠르다 자부하는 IT업계가 눈뜨고 코 베였다고 징징대는 것 또한 보기 좋은 일은 아니다. 착하고 순해서만은 이겨낼 재간이 없다. 그게 더 이상 공대생이 아닌 IT 비즈니스맨이 갖춰야 할 사업적 능력이며 과제다. 최근 IT업계의 가장 큰 이슈의 정점에는 쿠팡이 있다. 한동안 변별력 없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500여 개에 이른 소셜 커머스. 거품 빠진 사양 서비스 취급을 받던 소셜 커머스로 1조원의 투자를 유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투자자는 다름 아닌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다. 알리바바, 슈퍼셀 등에 투자하여 성공적인 결과를 이끈 벤처투자의 귀재다. 쿠팡이 이런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건 기술력 때문만이 아니다. 쿠팡의 성공(이라고 해두자)의 핵심 요소는 다름 아닌 배송이다. IT업체의 성공 요인으로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쿠팡은 고객 불만의 40퍼센트 이상이 기술적 문제가 아닌 배송에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문제 해결에 적극 뛰어들었다. 고객의 주문을 로켓 배송이라는 이름으로 당일 직접 배송하기로 한 거다. 로켓 배송 두 달 만에 1조원의 투자를 받았다. 매출 역시 전년도인 2013년에 470억대였던 것에서 2014년 3400억대로 급성장했다. 무려 800배에 가까운 기록적인 성장이다. 모두가 지고 있는 시장으로 본 소셜 커머스 시장을 IT업계의 가장 핫한 시장으로 만들었다. 기술이나 아이디어에 집착한 서비스가 아닌, 다른 생각을 통한 성공이다. 이게 역량이다. 당분간 IT업체의 가장 획기적인 반전 키워드는 ‘배송’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기술보다 더 중요한 건 문제를 푸는 스타트업 IT업체만의 새로운 시각이다.

[박스] 틀을 깬 또 다른 예

여기 한 개의 명함 인식 앱이 있다. 리멤버라는 앱이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명함을 촬영하면 자동으로 주소록에 저장된다. 물론 명함 관리 앱은 흔하다. 그러나 리멤버는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수많은 명함 인식 앱이 ‘광학 문자 인식’이라 부르는 기술로 사진 촬영한 명함에서 자동으로 정보를 가져오는 데 반해 리멤버는 그렇지 않다. 사진으로 촬영한 명함을 자동 인식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수동으로 대신 타이핑해준다. 광학 문자 인식 기술이 70퍼센트대의 인식률을 보이는 것을 넘어서기 위한 방법이다. 기술 개발에 시간과 에너지를 흘려보내는 대신 직접 타이핑해줄 사람을 모았다. 그 결과 90퍼센트대의 만족도를 제공하고 있다. 이 업체는 2015년 명함 관리 앱 중 소비자 만족 지수 1위를 기록했다. 60억원이 넘는 투자도 유치했다. 이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국의 기업 SNS 서비스를 기획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