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4년 3월
글/최태형 사진/박남규

얼마 전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다. 그때 지인의 추천으로 자동차 외장 복원 견적비교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카닥’은 스마트폰으로 견적을 비교하고, 수리까지 맡길 수 있는 서비스다. 카닥을 이용해 차를 수리하고 두 가지 점에서 놀랐다. 주먹구구식 자동차 수리 견적을 공유하고 비교하니 청구 내역이 투명해진 점이다. 사실 더욱 놀라운 점은 카닥이 다음 커뮤니케이션에서 시작해 분사한 회사라는 점이다. 다음은 검색, 커뮤니티, SNS 등 포털사이트의 전형적인 업무에 집중한다. 그런데 어떻게 자동차 산업, 그중에서도 외장 수리 영역을 서비스 타깃으로 삼을 수 있었을까?

카닥은 다음의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인 NIS(넥스트 인큐베이팅 스튜디오)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다음은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면서부터 모바일 퍼스트를 외쳤다. 포털의 미래 동력은 모바일에 있다고 생각했다. 시작은 경쟁사보다 빨랐다. 네이버보다 먼저 모바일 페이지를 만들었고 스마트폰 앱 서비스를 실시했다. 다음이 가지고 있던 PC 기반의 서비스를 모바일로 재빠르게 이동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시작은 빨랐지만 네이버의 저력과 사용자 수에 밀려 주도권을 쥐지 못했다. 여기에 카카오톡이라는 신생 서비스까지 등장해 다음의 자리를 위협했다. 모바일은 쉽지 않았다. 저력의 네이버와 재빠른 신생 벤처 사이에 정신이 없었다.

작은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거대해진 조직 안에서 동력을 구성원 개개인에게까지 미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혼자만의 열의로 시스템화된 조직의 방향을 바꿀 수 없다. 제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조직의 관성을 이겨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금 같은 모바일 세상이 기다려 줄 리 없다. 그래서 만든 게 사내벤처다. 사실 사내벤처 시스템은 이전에도 있었다. 그 힘을 증명한 것도 이미 여러 번이다. 삼성의 사내벤처로 시작한 네이버만 봐도 그렇다. 지금 다시 작은 조직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모바일 시장 때문이다. 모바일에서는 한두 분기만에도 시장이 뒤집힌다. 몸집을 키우며 승승장구하던 포털들이 힘을 못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평화된 작은 조직, 소통과 대응이 빠른 스튜디오 규모 조직에 맥을 못 추었기 때문이다.

NIS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사내 공모를 통해 가능성 있는 기획을 공정하게 선별해 별도의 팀을 만들어 지원하는 제도다. 대기업에선 좋은 기획안이 프로젝트를 만들지 않는다. 비약하자면 ‘통과된’ 기획안만이 프로젝트로 발전할 수 있을 뿐이다. 직속 상사가 낮은 수준의 시야를 가지고 있다면 혹은 조직의 방향과 맞지 않다면 좋은 기획도 빛을 잃는다. 그런 점에서 공모를 통해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최소한 그 조직의 최대치를 반영한다.

조직을 작게 만들려는 기업은 다음의 NIS뿐이 아니다. SK플래닛의 사내벤처 제도 플래닛X도 NIS와 대동소이한 제도다. 사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낸 아이디어를 경합해 사내벤처 체제로 변경하는 제도니까. 넥슨은 한발 더 나아갔다. 다음이나 SK플래닛의 사내벤처 제도가 인큐베이팅이라면 넥슨의 제도는 분가다. 최소한의 먹고살 돈을 주고 짐 싸서 내보내는 식이다. 사내 인큐베이팅 시스템이 일정 기간 기회를 주고 성공했을 때 분사를 시켜준다면, 네온 스튜디오의 방식은 처음부터 자회사로 내보낸다. 정말 벤처를 경험하게 한다. 실패한다면 다시 넥슨 본사로 돌아올 가능성도 적다. 물론 넥슨 스튜디오로 옮기며 돌아갈 생각을 하는 직원도 없다. 처음부터 모바일 게임을 위한 작은 팀들로만 회사를 꾸렸다. 넥슨 본사에서 기획안을 만들어 지원해 옮긴 직원도 있고 외부에서 기획을 실현시키려 네온 스튜디오로 들어온 직원도 있다. 두 경우 모두 새로 취업하는 것과 같다. 본사에서 누리던 복지와 지원을 포기하고 정말 하고 싶은 사람이 개척정신을 가지고 모인다.

사실 회사의 이런 노력을 가로막는 건 시스템이 아니다. 사내 분위기다. 모든 회사에는 회사를 유지시키는 핵심 서비스가 있다. 돈을 만들어내는 서비스다. 다음의 미디어 다음이 그렇고 넥슨의 카트라이더가 그렇다. 언제나 바쁘고 쉴 틈이 없다. 그런 서비스들이 볼 때 사내벤처는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릴 수 있다. 당장 누구는 산같이 쌓인 일을 처리하며 돈을 벌고 있는데 재미없다고 혹은 새로운 걸 하겠다고 훌쩍 팀을 떠나는 일손을 좋은 눈으로 볼 리 없다. 도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그래서 대개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 주변에 숨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 장을 담그지 않을 순 없다. 네온 스튜디오에서 여성을 상대로 한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공나연 팀장은 말한다. “팀을 나와 네온 스튜디오로 올 때 기존 팀과의 미묘한 트러블이 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네온 스튜디오가 아니었다면 회사 내에서 비주류로 평가받는 지금 이 게임들은 제작조차 못 했을 거다.” 네온 스튜디오의 경영기획실장이며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박범진 실장도 덧붙인다. “비범 혹은 기괴한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평범해선 지금의 판도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이곳에서 모든 주체는 팀이다. 그들이 하고 싶은 걸 한다.

이들에게는 목표와 과제가 명확하다. 목표는 당연히 프로젝트의 성공이다. 본사의 복지와 연봉을 포기하고 덤비는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프로젝트를 원 없이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더욱 성공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그렇다면 두둑한 인센티브의 열매도 기다린다.

지금 온라인 업계에서 성패를 가늠하는 기간은 길어야 6개월에서 1년 정도다. 급변하는 모바일 환경에서 그 정도의 시간은 매우 긴 시간이다. 그 기간을 넘기는 건 목표 중 하나인 재빠른 대응에 맞지 않는 방만이다.

아직 IT 기업의 숨구멍이 작은 조직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순 없다. 사내 인큐베이터 시스템이 다시 조직의 화두로 떠오르고 시작된 게 길어야 1년이기 때문이다. 다음의 카닥이 거둔 결실이 거의 처음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사이 엎어진 팀들이 더 많다. 그러나 시도가 좋다. 늙은 조직의 젊은 인재가 같이 늙어가기를 거부하는 것. 조직을 변화시켜서라도 창의성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그렇다. 작은 조직으로의 귀환이 IT 업계의 ‘황금알’일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