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신체 사이즈 때문에 베스 디토(Beth Ditto)는 패션 디자이너에게 그리 매력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디자이너들이 생각하는 패션쇼의 롤모델은 그녀와는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누구에게나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 됐다. 그가 패션 디자이너라 할지라도….
Numéro, 2009년 9월
by Phillip Utz / Photographed by Sofia Sanchez & Mauro Mongiello / 에디터 | 최태형 스타일리스트 | Frédéric Baldo 헤어 | Lyndell Mansfield 메이크업 | Andrew Gallimoro
[Numéro] 당신은 레즈비언인가?
[Beth Ditto] (웃음) 내가 수년간 그 사실을 숨겼다 해도 나의 성향이 그렇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사실 나는 남자들이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한 내가 동성연애자인 것이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했다. 내 친구들이 나를 남자 스트립 댄서가 나오는 클럽에 데려가려 했을 때 내가 여자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
당신이 이동 주택에서 자랐다고 들었다.
그렇다. 생활환경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나는 굉장히 진보적인 가족 가운데 자랐다. 그들은 인종과 남녀 간의 평등은 물론 성적 취향에서의 평등까지도 강조할 정도였다.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아닐 것이다.
언젠가 가족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통조림 스튜가 부족해 구운 다람쥐 고기를 먹어야 했다는 게 사실인가?
그렇다. 만일 당신이 둥근 오징어튀김을 손에 들고 아칸소(Arkansas)에 오게 된다면, 그곳 사람들은 당신을 야만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각자 다 자기만의 문화와 풍습이 있는 법이다.
물론이다! 당신은 다람쥐 고기를 어떻게 해서 먹었는가? 레어? 미디엄? 웰던?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던 방법은 먼저 머리를 펄펄 끓는 물에 삶은 다음 입으로 다람쥐 눈을 쪽 빨아 먹는 것이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라. 나는 단지 아칸소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을 그대로 말한 것뿐이다. 증거도 있다. 그곳에는 다람쥐 사냥철이 따로 있고, 모든 공무원이 빠짐없이 참여할 정도다. 내가 텔레비전 방송 출연차 런던에 갔을 때, PD가 다가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텍사스 출신이에요. 나도 쥐 종류의 고기를 즐겨 먹어요!”
음식 말이 나와서 그러는데, 어떻게 해서 당신이….
뚱뚱해졌느냐고 묻는 것인가?
단도직입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괜찮다. 전혀 불편해하지 않아도 된다.
‘뚱뚱하다’고 말하는 것이 불쾌하지 않은가?
고양이를 고양이라고 부르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뚱뚱하다.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그녀는 자신의 배를 움켜쥐었다.) 자, 봐라. 이것이 지방 덩어리다. 지방 조직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거다. ‘뚱뚱하다’는 것이 ‘뚱땡이’나 ‘하마’처럼 모욕적인 말은 아니지 않은가. 요즘 좀 안타까운 것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런 비유적인 말을 쓴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패션 잡지사에서는 2kg 찌는 것이 해고의 사유가 된다는 사실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들은 내가 유행에 반대하는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날씬한 사람들을 반대할 이유가 뭐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자신에게 만족하고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날씬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 자체에는 반대한다. 요즘 많은 분야에서 ‘뚱뚱함’이 ‘추함’과 같은 개념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것 같다. 패션계는 두말할 것도 없지만, ‘날씬함’이 비즈니스 아이템이 되고 제약업계가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날씬해 보이게 만드는 제품이나 기적의 다이어트 제품 등을 생산해내는 업체가 전 국가 산업 중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95%의 다이어트가 실패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로 볼 때, 당신은 이렇게 활발한 산업들이 어떤 점에서는 거대한 자본을 자기네 뱃속으로 긁어가고 있다고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몸 때문에 상처받은 적은 없는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오렌지 같은 피부, 썩은 치아, 안짱다리…. 다 마찬가지다. 누구도 이 문제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자신의 부족한 점과 함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록 스타가 된 후 당신은 돈을 좀 벌었는가?
나는 뮤지션이지만 <가디언>의 기자 활동도 하고, 영국 브랜드 ‘에반스’에서 기성복을 제작하는 데 참여하기도 한다. 이렇게 나는 유쾌하게 생활비를 벌고 있다. 작년에는 자서전 출간 계약까지 했다. 27세에 나의 인생 기록을 책으로 펴낸다는 생각이 좀 우습긴 했지만, 그들이 나의 환심을 사려고 제안한 액수는 그저 웃어넘길 정도가 아니었다. 이 제안 덕분에 내가 집을 살 때 빌린 돈을 꽤 많이 갚을 수 있었고, 2년 전부터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가난한 우리 엄마에게 정수기를 사드릴 수도 있었다. 나는 엄마를 돕기 위해서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한다.
한 달에 정확히 얼마를 버는가?
정확히 말해 약 4000달러 정도 된다. 나에게는 이것도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집 사느라 빌린 돈을 매달 2000달러씩 상환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부족한 게 없다. 정말이다.
왜 당신은 머라이어 캐리가 바르 미츠바(유대교의 남자 성년식)에서 한 번 노래 부르고 수백만 달러를 챙긴 것처럼 하지 않는가?
당신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머라이어 캐리가 아니다. 그리고 똑같이 바르 미츠바에서 노래를 불러도 수백만 달러를 받지는 못한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절대 그런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