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아이러니한 일이 많다. 구소련의 공산주의 아래에서 태어난 로모 카메라가 모든 룰을 깨고 ‘생각 없이 그저 찍어라’며 자유로운 사진을 대표하다니. 로모로 찍은 사진만큼이나 재미있다.
Numéro, 2008년 12월
에디터│최태형 포토그래퍼│김태선 제품 협찬│로모그래피 코리아(www.lomography.co.kr)
“난 단지 이 카메라가 내 목숨 뺏어가거나 나를 시베리안 툰드라 노동 수용소로 보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야.” 1982년 봄, 41세의 수석 엔지니어 미하일 그리고리예비치 홀로미안스키(Mikhail Grigorievich Kholomyansky)가 그의 창조물에 마지막 손길을 보태며 수십 번 되뇐 말이다. 그리고 그 창조물은 바로 자동카메라였다. 프로덕트 매니저인 올가 니콜라예브나 츠베트코바(Olga Nikolaevna Tsvetkova)의 매서운 관리 감독 아래서 미하일은 실제로 1년 반 이상을 그의 팀과 밤낮으로 일했다. 바로 구소련의 요구에 의해서, 더 정확히 말해 국방부 부장관인 이고르 페트로비치 코르니츠키(Igor Petrovich kornitsky)의 까다로운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바로 내가 바라던 카메라는 일본 Cosina CX-2 카메라다. 단순하고 다루기 쉽고, 완벽한 자동카메라. 그러나 일본의 카메라 기술도 좋지만 나와 소련의 목표는 더 좋은 카메라, 더 저렴한 소련제 카메라를 전 공산국에 제공하는 것이다.” 국방부 부장관은 일본 카메라를 들이밀며 그들만의 카메라를 만들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카메라가 재미있는 카메라가 될 거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사실 제작이 수월할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국방부 부장관에게 카메라를 보여줘야 했고, 그보다 더 자명한 사실은 그럴 만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바라는 건 국방부 부장관이 우리에게 화를 많이 내지 않았으면 하는 것뿐이다.” 군수품을 만드는 과학기술부의 수장이 이마에 흥건히 땀을 흘리며 걱정한 말이다. 이렇게 로모의 시작은 수월하지도 자유스럽지도 않았다.
그 후 일본 카메라와 독일 카메라를 만드는 공장을 찾아 제품을 만들게 됐고 일본 디자인과의 법적 문제를 고려해 새로운 디자인을 입혀 그들만의 카메라를 선보이게 된다. 이렇게 시작한 카메라가 바로 LOMO CL-A다. 그러나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소련의 패망과 함께 로모도 서서히 사라져 버렸다.
1990년 초 오스트리아의 장난기 많은 학생 배낭여행객이 우연히 파라과이의 중고품 시장에서 로모를 발견했다. 독특한 사진기와 사진을 자랑 삼아 친구들에게 선물하거나 팔았고 일반 카메라와는 조금 다른 색감과 우연히 얻어지는 결과물은 로모만의 재미를 선사했다. 로모는 이렇게 우연히 인기를 얻게 되고 중지되었던 생산 라인이 다시 가동되었다.
1994년 첫 번째 로모그래피 전시회가 모스크바와 뉴욕에서 동시에 개최됐다. 그 후 몇 달 뒤 로모그래피 대사관이 베를린에 창설되었고 각 나라별, 지역별로 로모와 관련된 이벤트와 회원들을 늘려가는 바탕이 되었다. 이후 세계로 뻗어나가 현재는 60개 이상의 로모 관련 오피스가 전 대륙에 존재하게 되었다. 로모는 그 시작과는 달리 편리함과 작은 사이즈, 독특한 화각과 색감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1997년 로모그래피닷컴(www.lomography.com)이 론칭했으며 첫 번째 로모 월드 콩그레스(The World Congress)가 마드리드에서 개최되었다. 로모를 사랑하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열었고, 로모만의 골든 룰을 만들어 사진을 찍었다. ‘언제 어디서나 로모와 함께할 것’, ‘밤낮을 가리지 않고 로모를 사용할 것’, ‘로모그래피는 당신 삶에 끼어든 것이 아니라 그 일부’, ‘눈높이를 바꿔 찍을 것’, ‘생각하지 말고 찍을 것’ 등으로 이어지는 로모의 룰은 그야말로 자유스러움 그 자체다.
25년 전 공산주의 아래에서 만들어진 카메라는 지금은 전혀 다른 자유를 상징하는 사진기가 되었다. 아이러니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로모의 특이함은 탄생 배경과 사용에서 오는 아이러니뿐만이 아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모든 필름 카메라 시장을 잠식한 상황에서도 로모만은 건재하다. 아니, 오히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로모그래피처럼 보이도록 보정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들은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도 로모를 챙긴다.
얼마 전 25주년을 기념하는 로모 사진집이 나왔다. 작고 귀여운 플라스틱 카메라 로모의 사진집은 크다. 두껍고 무겁다. 로모처럼 아담하고 작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는다. 로모의 골든 룰 중 마지막 10번을 안다면 놀랄 일도 아니다. ‘이 모든 룰 따윈 잊을 것’. 깨기 위해 룰을 만드는 로모의 독특한 매력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할 수 없다. 그저 찍고 즐기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