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빚어 인체를 만든다. 머리카락을 심고 눈을 이식해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완벽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뿔과 날개가 돋아난다. 조각가 김현수가 현실로 불러낸 판타지는 이렇다.

Numéro, 2009년 4월
에디터│최태형 포토그래퍼│김형식

김현수는 흙을 빚어 소년을 만든다. 아직 덜 자란, 성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소년. 사람과 같은 크기의 극사실적 조각으로 만든 신체는 현실의 사람과 분간하기 힘들 만큼 정교하다. 조각품이 진짜 사람 같다고 느끼는 순간, 김현수의 판타지는 시작된다. 머리에 난 뿔을 부러뜨리는 소년, 날개를 달고 잠이 든 소년 모두 현실 속 공간에 있다. 불안한 얼굴을 들어 관람객을 바라볼 것 같고, 감은 눈을 뜨고 몸을 뒤척일 것 같다. 마치 실존하는 듯하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며 숨어들고 싶어 한 도피의 공간. 갤러리 현대 강남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조각가 김현수를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곳에서 그는 아직도 소년으로 살고 있었다.

[Numéro] 흙이라는 소재와 인간이라는 주제가 흥미롭다.

[김현수] 흙으로 만드는 작업도, 사람을 만드는 일도 좋았다. 대학 다닐 때부터 그랬다. 또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른다. 흙은 다루기 좋을 뿐 아니라 표현하기도 좋다.

흙의 질감만을 가지고 하는 얘기는 아닌 듯하다.

흙은 사람이 다시 돌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종교를 갖고 있나?

종교는 없다. 모든 종교 나름대로의 교리나 이야기를 믿는다. 다만 종교 자체가 가지는 편협한 시각은 나와 맞지 않는다. 싫어한다기보다는 좋아하는 편이 아니랄까?

반인반수, 뿔, 날개 같은 판타지적 요소들이 있다. 그런데 판타지 속 인물은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이다. 나약해 보이기까지 한다.

동물이건 사람이건 인간인 나를 거쳐서 표현되니까. 또 판타지적이라고 해서 슈퍼맨 같을 필요는 없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담고 있는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신들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굳이 과장된 요소를 그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반인반수는 더 많은 판타지적 요소를 담을 수 있다.

동물이 인간의 몸을 하고 인간과 신화적 존재의 구분이 모호한 이유는 무엇인가?

판타지적 존재들, 예를 들면 요정이라고 해서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인간의 세계관을 갖고 있다. 표현하는 대상을 달리했을 뿐이다.

‘실물 캐스팅’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따로 모델이 있는 게 아니다. 나 스스로를 보고 변형해서 만든다.

흔히 극사실적 작품들은 전달하려는 의도를 한꺼번에 다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완벽한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 상상의 개입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당신의 작품들은 그렇지 않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건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다. 어릴 적의 꿈이나 생각처럼 다른 세계를 표현하고 싶다. 나의 어릴 적 경험들이 맞물려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그때 생각했던 비현실을 현실로 끌어내 마치 실재한다는 느낌을 전달하고 싶다. 말하자면 꿈을 현실이라고 믿게 하기 위한 도구이다.

뿔은 어떤 의미인가?

수사슴의 완벽한 뿔은 성인이 됐음을 의미한다. 뿔을 부러뜨리는 것은 성숙에 대한 거부와 두려움이다.

작가인 당신에게서 떼어내고 부러뜨리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아직도 어른보다는 소년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사회 속에서 나는 어른이 되어간다. 작품 속 소년이 떼어내고 싶은 게 바로 내가 떼어내고 싶은 것이다.

거대한 피규어 같은 작품을 보면서 작가는 소년 같은 이미지의 키덜트족일 거라 생각했다.

내 하루 일과도 아침 먹고 작업실에 와 있는 게 전부다. 밖에도 잘 나가지 않는다. 내 작품이 현실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이 작업실은 나만의 현실 도피 공간이다. 어떻게 보면 무책임한 것일 수도 있다. 열심히 작업하는 것은 현실 도피인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현실에서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증거다. 철이 안 든 거지….

작품 속 날개 역시 현실을 거부하는 요소인가? 그렇다면 왜 단단한 날개가 아닌, 잠자리 날개인가?

그 또한 나의 판타지이자 꿈이다. 날 수 없으니 날개가 있어야 한다. 잠자리 날개인 이유는 어릴 적 본 검은색 날개가 달린 잠자리가 무척 신비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물로 치면 백호처럼. 그게 기억 속에서 밖으로 표현되어 나온 것이다.

당신이 만드는 작품 속 사람은 소년이 아니면 여성과 아이다.

나도 몰랐던 사실이다. 특별히 의도한 게 아닌데, 만들다 보니 남자는 나를 표현하는 소년이었고 그 외에는 여성이었다. 결혼 후 첫아이를 낳았을 때였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의문을 품게 되었다. ‘저 아이는 표현은 못하지만 뭔가 얘기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옹알이하는 모습이 마치 어른이 보지 못하는 세계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작품 속에서 아이는 판타지와 실재를 이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그렇게 보면 소년은 나이고, 다른 여성과 아이는 결국 내 가족이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은 아름다운 요소를 전제로 할 것이다. 당신이 보여주는 작품의 미적 가치는 무엇인가?

내포하는 뜻이 아름답지 않더라도 외형적으로 매력적인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연약한 소년이고 여성일 수도 있다.

극사실적 작품이 완숙 단계에 들어서면 결국 실제와 똑같아지는 것이 아닐까?

존재하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결과적으론 ‘기술’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려는 것이다. 이 작업을 계속하다 보면 대상을 만드는 것을 넘어 다른 세계의 공간을 구성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피규어나 만화 속 캐릭터를 보면 인간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로봇이나 괴물 같은 요소를 작품에 가져오면 어떨까?

그런 생각도 하고 있다. 나는 다른 세계에 대해 총체적으로 관심이 많다. 동화나 신화 속의 대상을 실제처럼 표현하는 것에 대해 늘 고민한다. 나의 감정과 생각을 내포하는 대상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현실 도피적 작품을 만들며 ‘현실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주목을 많이 받고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작업이 곧 그런 심적 부담을 피하는 도피 수단이다.

그렇다면 작업이 잘 안 될 때는 어떤가?

그럴 때도 많다. 어떻게 하면 그럴듯하게 표현할지 항상 고민한다. 그러나 그게 작업의 과정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더 보여줄 생각인가?

방법에 있어서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여성을 표현할 것이다. 지금 작품의 사슴은 뿔을 꺾는 소년을 보고 있다. 그러면서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프니까 어루만져주는 것 같기도 하다. 새끼 사슴은 어미 사슴 혹은 뿔 꺾는 소년을 본다. 어미 사슴에게 슬픈 표정으로 소년에 대한 감상을 말한다. 이런 것들을 표현하려 한 거다. 여성(어미 사슴)은 나를 어루만져주는 거고, 아이(새끼 사슴)는 “아빠, 왜 그래?” 하면서 걱정 혹은 슬퍼하는 것이다. 일종의 성장에 관한 내 스스로의 이야기를 여성, 아이에 대입해서 표현할 것이다.

자아의 표출 이외에 전달하고 싶은 다른 메시지는 무엇인가?

내가 의도한 것과 별개로 관람객 스스로가 나름의 방법대로 내 작품을 느꼈으면 한다.

Pygmalion ef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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