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바이크를 말하자면, 단연 베스파다. 1945년 탄생하면서부터 가장 이탈리아다운 창조물이라 칭송받은 베스파는 2008년 마지막 남은 올드 모델 PX125를 단종시키고 새로운 디자인의 Vespa S로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Numéro, 2008년
에디터 | 최태형 포토그래퍼 | 안주영 제품 협찬 | (주)트리비코(www.tribico.com)
영국의 모즈(mods)족에서부터 이탈리아의 스트리트 리더까지 그들의 발이 되어온 스쿠터. 그중에서도 클래식 스쿠터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베스파는 스쿠터의 시초로 탄생하면서부터 지금까지 화려한 명맥을 이어왔다. 1946년 엔진을 커버로 가리고 운전의 편의를 위해 손으로 기어 변속을 할 수 있게 했으며, 운전자의 안전을 지키고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앞 프레임을 디자인해 세상에 선보임으로써 새 출발한 베스파.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유의 디자인을 유지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베스파는 탄생에서부터 모터사이클의 불편한 포지션과 어려운 운전 방식을 개선하고자 한 이탈리언의 창조성에 의해 기존에 없던 전혀 새로운 디자인으로 완성되었다. 이는 세기를 뛰어넘는 독특함으로, 지금도 스쿠터를 말할 때 ‘올드’라는 수식어를 ‘최고’라는 수식어와 동급으로 인식하게 했다. 1950년대 영국 모즈족의 이동 수단으로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고, 〈콰드로페니아〉, 〈로마의 휴일〉 등의 영화에 등장해 문화적 코드를 두루 내포하며 단순히 스쿠터의 한 종류가 아닌 ‘베스파’라는 명사로 자신만의 영역을 굳건히 했다. 모즈 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비틀스풍의 패션 스타일, 록 음악 등 예술의 범주에 있는 창조물과 산업 활동의 결과물인 베스파가 함께 손꼽힌다는 것은 그만큼 베스파가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한다는 뜻이다. 네오모즈(neo-mods)를 표방하는 밴드 오아시스의 앨범 재킷 이미지에 베스파가 자리 잡고,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가 그의 컬렉션에 베스파를 등장시키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베스파의 인기는 베스파의 구조와 디자인을 본뜬 많은 스쿠터들을 탄생시키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아메리칸 바이크의 대표, 할리 데이비슨이나 슈퍼바이크로 통하는 두카티 역시 스쿠터를 제작했다는 사실은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베스파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현재 제작되는 소형 스쿠터 대부분이 베스파의 디자인과 구조를 따르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베스파가 처음 생산될 당시 전 세계는 이탈리언의 새로운 창조물에 관심을 기울였다. 〈타임스〉는 “거대한 로마 이후 진짜 이탈리아의 물건이 탄생했다”며 극찬했고,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베스파가 탄생한 지 불과 4~5년 만에 수천 개의 클럽을 탄생시키며 자유의 아이콘으로 베스파를 정의했다. 영화와 문학을 비롯해 광고계에까지 이 새로운 바람이 자리 잡았고 루이 비통, 돌체 앤 가바나 등 베스파의 이미지를 빌린 수많은 캠페인이 쏟아졌다. 1987년 탄생한 베스파 PX125 모델은 그 시절에도 베스트 빈티지 아이템으로 손꼽혔고, 지금까지도 유럽과 일본 등지의 베스파 라이더들에게 최고의 모델로 꼽히고 있다. 이처럼 베스파의 꾸준한 인기와 시대를 이어온 클래식의 미학은 단순히 산업 활동의 결과물만이 아닌 그 이상의 문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Vespa Identity
1978년 첫선을 보인 PX125는 베스파 중에서도 2000만 대 이상이 팔려,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모델이다. 또 1977년 탄생부터 2007년 단종될 때까지 동일한 디자인으로 생산되었으며, 베스파에서 가장 오랜 기간 생산된 모델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이는 PX125가 가장 오랜 기간 ‘베스파’라는 이미지를 상징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PX125는 단종될 때까지도 디자인에 있어 변형은 찾아볼 수 없다. 매년 새로운 디자인의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30년을 이어온 디자인이 건재한다는 것은 그 디자인 철학이 얼마나 밀도 높은지를 대변한다.
1996년 베스파는 기존의 올드 모델과는 어딘가 다른 ET 시리즈를 내놓았다. 베스파가 건승해온 히스토리와 이룩해놓은 헤리티지는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나 기능이나 디자인 면에서는 창조적인 모습보다 바이크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일본 스쿠터를 답습한 모습이었다. 그 첫째로 초기 베스파를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운행할 수 있게 한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인 철제 모노코크 구조를 일부 플라스틱으로 대체했다. 그리고 베스파만의 자랑이던 수동 손목 기어 방식을 없애고 전 차종에 오토미션을 달았다. 이뿐 아니라 외형적인 변형도 겪었다. 미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대배기량 250cc 이상의 스쿠터를 제작하면서 유선형의 날렵한 외관을 포기하고 투박한 모습을 가지게 됐다. 이 때문에 오리지널 베스파를 사랑한 라이더들에겐 변종으로 외면당하기도 했으며, 올드 모델과 신형을 전혀 다른 브랜드로 인식하게 만들기도 했다.
올해는 베스파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해다. 베스파의 아이덴티티라 할 수 있는 PX125가 단종되고 맞는 첫해이기도 하며, Vespa S 시리즈를 처음으로 선보인 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S 시리즈가 여타 신형 모델들과 다른 의미를 갖는 이유는 PX 시리즈가 지키고 있던 베스파의 오리지널리티를 고스란히 물려받아야 하는데 있다.
Vespa S는 영화 〈나를 책임져, 알피〉에서 주인공 주드 로가 탔던 1960년대 모델 Vespa Sprint에서 정통성을 부여받은 사각 헤드라이트를 가지고 있으며, 1985년 생산된 T5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오토미션, 디스크브레이크 등 최신의 편의 장비까지 갖추었다. 이로써 베스파는 신형 모델로서 버거워 보이던 베스파의 감성을 보란 듯이 다시 부흥시켜 ‘가장 이탈리언다운 창조물’로 돌아가는 중이다. 들을수록 소모되는 팝이 아닌, 점점 깊어지는 클래식처럼 다시금 디자인 철학을 정립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Vespa S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