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모델로, 서른 살의 여자로,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하는 뮤지션으로…. 장윤주는 남들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자신만의 자리를 만들어놓았다. 영리하게.
Numéro, 2009년 3월
Photographed by Kim Hyeonseong / 에디터 | 최태형 스타일 에디터ㅣ김소현 헤어 | 김선미 at 고원 메이크업 | 설은 at 고원
[장윤주] 배가 너무 고파요. 뭐 먹으면서 해도 되죠?
[Numéro] 그럼요. 배가 불러야 좀 편해지죠.
(주문한 레몬 티 대신 잘못 나온 레모네이드를 보며) 따뜻한 레몬 티를 주문했는데 바꿔야겠어요.
탄산이 들어간 음료는 안 먹지 않나요? 몸매를 위해서?
그렇지 않아요(웃음). 그냥 따뜻한 게 먹고 싶었을 뿐이에요.
모델 얘기를 먼저 하게 되네요.
아무래도 오랫동안 모델로 활동했으니 당연하겠죠.
모델이기에 언제나 멋지게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평상시에라도 편하게 입자고 생각하나요?
음…, 신경을 써요. 스타일에 관해서는 워낙 관심이 많기도 하고, 모델로 활동하면서 습관적으로 ‘옷 입는 것’에 대해 생각하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사치스러운 건 아니에요. ‘블링블링’한 스타일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요. 대신 편안한 스타일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죠.
모델이기에 옷이 중요하겠죠. 그렇다면 반대로 옷을 벗었을 때가 궁금한데요? 샤워할 때마다 완벽한 몸매에 감탄하는지, 아니면 매일 조금씩 나이 들어가는 모습에 슬퍼하는지 궁금해요.
감탄하려고 노력해요(웃음). 사실 2년 전부터 보디 케어 제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몸매나 피부 관리에 민감하지 않았죠. 거울을 보며 ‘아! 내 몸매는 아름다워’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요. 그런데 이제 샤워하고 오일 바르고, 이런저런 크림까지 바르기 시작했죠. 촬영 때 ‘뱃살, 등살이 많이 쪘어요”라고 한 거 모두 사실이에요. 그래서 배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어요. 나잇살은 어쩔 수 없거든요. 그래도 일단 스스로 감탄하려고 노력해요. 이런 말이 있잖아요. 식물도 자꾸 예쁘다고 해줘야 잘 자란다고요. 보디 제품을 바르면서 스스로 몸 이곳저곳을 점검하고 칭찬해주는 거죠.
막연히 우울하고 염세주의적일 거라 생각했는데 긍정적인 편인가요? 아니면 부정적?
후자가 맞는 듯하네요. 우울한 사람이 아닌데, 또 우울한 사람이기도 해요. 다양한 면이 있죠. 일 때문에 활발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면도 있고요.
사실 음반을 낸다고 했을 때 캣워크에서의 음악처럼 비트가 강한 음악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모델이라면 화려한 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니까. 앞으로 2집도 1집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해요. 다만 감성 위주였던 1집에 비해 2집엔 저의 ‘감각’이 가미될 거예요. 모델로서의 카리스마 같은 것들 말이에요. 아무래도 1집은 조용한 음악 위주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얌전한 고양이 같은 면을 많이 보여주었죠. 그럴 수밖에 없었고요. 그런데 활동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쩔 수 없는 나의 ‘끼’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느꼈죠. 1집의 그런 감성적인 면과 모델로서의 카리스마를 잘 매치해보자. 밴드 음악이 끌리더라고요. 드럼과 베이스 소리도 매력적이고요. 밴드 사운드를 낼 것 같아요.
부지런하게도 벌써 2집까지 생각하고 있군요.
이번 1집을 내고 만족했어요. 처음엔 메이크업을 지운 음악을 하고 싶었고, 그렇게 했죠. 워낙 모든 음악을 좋아해요. 지금 나오는 음악(블루스풍의 재즈)도 너무 좋아하고요. 이번 앨범으로 라이브 무대에 서면 설수록 점점 더 밴드 음악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1집에서 감성적인 장윤주를 많이 보여줬다면 2집에서는 감각적인 면도 보여주려고요. 전 감성적인 면에서는 타고났다고 생각해요. 반면에 감각적인 면은 모델 일을 하면서 생긴 것 같아요. 10여 년 넘게 감각적인 일을 했기 때문에 감성을 감각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후천적 재능을 발견하게 된 거죠. 그런데 이제는 감각적인 것을 배제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1집에서 그게 아쉬웠어요.
장윤주가 하는 일들은 감성적인데 그걸 처리하는 과정은 굉장히 이성적인 느낌이에요.
인터넷 포털에 이 주의 앨범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어요. 한 평론가가 가장 낮은 평점을 주면서 이렇게 썼더라고요. ‘아주 영리한 마케팅의 승리’, 뭐 이런 식의 글이었어요. 그걸 보고 난 “아닌데…” 하면서도 기분은 좋더라고요. 영리하다기보다 제 자신을 잘 아는 거겠죠. 주관적으로 바라볼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나를 볼 수 있는 것. 이제 그런 눈이 좀 생긴 듯해요. 그래서 영리하다는 표현을 쓰는 거겠죠. 하지만 전 관심이 없는 분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라서 단점이 되기도 하고요. 반대로 좋아하는 분야에서는 한 우물을 파는 스타일이에요.
미니홈피에 그려놓은 그림을 봤어요. 자신이 하려는 일에 있어서 어떤 포트폴리오를 보여줘야 하는지 아는 것 같더라고요.
좀 부끄럽네요(웃음). 잘 그리지도 못할뿐더러 그냥 끼적거린 수준이에요. 주위에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그냥 워낙 생각이 많고 감성이 풍부해서 그렇죠 뭐. 그게 그림이든, 음악이든, 사진이든 분출을 해줘야 돼요. 심경이 정말 복잡할 때는 말도 안 되는 그림을 그릴 때도 있어요. 그러다 보면 해소가 되는 거죠.
그러면 앞으로 그림도 그려볼 생각이 있는 건가요?
아니요. 저를 좋아하는 분들이 제 미니홈피에 올린 그림들을 보고 다른 재료로 시도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하기도 했죠. 간단한 전시회 형태로 접할 수 있도록. 사실 전시 같은 건 해보고 싶어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다른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다 생각이 많아서 그런 거죠. 너무 많아서.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윤택해지는 반면, 돈에는 또 약하더라고요.
맞아요. 사실 경제관념이 큰 사람은 아니에요. 돈에 대한 감각은 없는 것 같아요. 저도 이것저것 보는 게 있으니 펀드도 해보고 재테크에도 관심을 가져보고 했는데, 아까도 말했듯이 관심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잘 안 되더라고요. 제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들에만 정신을 쏟는 편이죠.
집에 있어도 혼자 바쁠 스타일이에요. 혼자서도 잘 놀아서 남자 친구가 있다면 싫어할 것 같아요.
그렇지도 않아요. 사랑에 있어서는 아직도 아이라서요. 성숙해질 법도 한 나이인데. 사랑 앞에선 늘 어린아이 같아요. 일하느라 바쁘다가도 사랑에 빠질 땐 확실히 빠지고…. 제 스스로가 가지고 있고, 표현하고 싶은 게 너무나 뚜렷하기 때문에 남자 입장에선 감당하기 힘들 수도 있을 거예요. 그래도 뭐 별수 있나요? 좋아하면 다 감당해야죠. 좋아하는 감정이 마음대로 되나요.
그럼 결혼도 생각할 나이일 듯한데요.
결혼해야죠. 절 닮은 아이도 낳고요. 음악에 관심이 있고, 예술에 관심이 있고, 옷보다는 스타일에 관심이 있고. 스타일은 결국 그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을 말해주는 거잖아요. 그건 곧 사람한테 관심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관심이 많다고 해서 사람을 빨리빨리 교체하는 성격이라는 말은 아니에요. 오히려 길게 만나요. 적어도 2년 반 이상은 만났죠. 그래도 아직 ‘저 사람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과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결혼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있죠. “혹시 결혼한 뒤에도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생기면 어쩌나.”(웃음) 결혼이 먼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애써 외면하고 있는 거죠 뭐.
여자로서의 서른, 모델로서의 서른, 그리고 뮤지션으로서의 서른은 의미가 다 다를 것 같아요.
‘여자’ 장윤주의 서른 살은 썩 기쁘지는 않아요. 모델로서의 서른살은 조금 암울하고요(웃음). 그런데 뮤지션으로서의 서른 살은 제가 생각해도 정말 좋아요. 어릴 때 뿜어내는 에너지도 좋지만, 성숙된 모습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잖아요. 물론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죠. 설레고 하고 싶은 것도 아직 너무 많아요. 뮤지션으로서 생각해보면 많은 나이도 아니고요. 언니의 입장으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줄 수 있을 때이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도 웃기지 않은 나이예요. ‘뭘 좀 아는 나이’라는 거죠.
책임감도 더 커졌을 듯해요.
당연히 커졌죠.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던 시절도 분명 있었어요. 지금은 감성인 면은 되도록 내 자신 속에 가둬두죠. 이성적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해요. 나를 위해, 혹은 상대방을 위해 책임을 지고 있다는 뜻이겠죠?
방송은 어때요? TV 프로그램 <음악 여행 라라라>도 진행하잖아요?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활동적이라서 어느 하나에 묶여 있는 게 고역이더라고요. 그런데 재미있어요. 음악을 너무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런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게 좋아요. 음악에 집중하니까. 여타 음악 프로그램은 토크가 많잖아요. 그런데 <음악여행 라라라>에서는 한 아티스트가 예닐곱 곡을 불러요. 그런 프로는 없잖아요. 뮤지션으로서 도전도, 감흥도 많이 받고요. 그리고 이적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갈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뭔가 고정적으로 시간을 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럽긴 해요.
역시나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그렇군요. 꽃이나 식물은 다 말라 죽이겠어요.
정말 식물에는 관심이 없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좋아지면 끝을 볼 수도 있죠. 나이 들어서 그럴 것 같기도 하네요. 그렇지만 아직은 자연에 관심이 없어요. 사실 요즘은 그것보다 인테리어, 조명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아요.
결국 집에 관심이 있다는 뜻이네요.
맞아요. 결국은 ‘독립’을 하고 싶은 거죠. 물론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독립했지만, 저만의 공간을 갖고 싶은 거예요. 지금도 저는 옥탑에서 거의 따로 떨어져 사는데도 완전히 독립하고 싶어요. 제 공간 겸 작업실을 만들고, 그다음엔 어쿠스틱 피아노를 한 대 사고, 녹음실도 만들고 싶어요.
결국 또 음악이네요.
네, 그러네요. 솔직히 말하면 모델만 할 때는 톱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패션계가 빠르게 돌아가다 보니까. 어떤 모델이 어떤 화보를 찍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조금만 주춤해도 뒤처진 것 같고, 도태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그 세계에서 살짝 벗어나 생각해보니까 왜 그리도 조급해했나 싶더라고요. 지금은 뇌의 3분의 2 이상이 거의 음악으로 가득 차 있어요.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고, 좋은 가사를 쓰고 싶고.
그럼 지금 자신의 위치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요?
제 위치라….억지스럽지는 않은 위치인 것 같네요. 저 스스로가 자연스럽게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행이죠. 욕심에 휩싸일 때 억지스럽게 행동할 때가 있잖아요. 모델계에 있을 때 그랬어요. 워낙 빠르게 돌아가고, ‘붙잡아야 할 것들’이 많았죠. 또 앞에서 말했듯 ‘톱’에 대한 강박이 심했고요. 그런데 나와서 보니 오히려 더 높은 위치에 서 있더라고요. ‘누가 뭐래도 난 톱이다’라는 진솔한 자부심이 생겼어요.
꺼질 줄 모르는 자신감이 보이는데요, 그래도 하나쯤은 안 될 것 같은 일이 있을 듯해요.
있어요. 하지만 말하고 싶지 않아요(웃음). 사람이니까. 서른 살의 여자로서 그런 일이 왜 없겠어요.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인정. 일이든, 사랑이든 그런 게 있었죠. 그런데 앞으로는 없을 거예요. 제한을 두거나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마지막 질문은 <누메로 코리아>의 공식 질문이에요.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뭔가요.
1이요. 전 그냥 1이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