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
Esquire Korea, 2013년 8월
TV의 역습이 시작됐다. 공중파, 케이블, 종편에서 쏟아내는 수많은 프로그램이 우리를 유혹한다. 예능, 드라마, 다큐, 리얼리티, 보도에 이르기까지 <에스콰이어>의 눈으로 바라보고 해석한 2013년 신 TV 가이드. 이것 한 가지만 명심하면 된다. TV는 바보상자가 아니라는 것.
TV를 점령한 남자들
눈물 콧물을 ‘찔찔’ 짠다. 하소연하고 울다가 돌연 킥킥거리기 바쁘다. 지금 TV 속 남자는 이렇다.
TV를 틀었다. 육중한 몸매에 어수룩하게 군복을 입은 외국인 이등병이 뒤뚱대고 있다.
“삼십… 오… 뻔 꾜육쌩 쌤…. 해밍턴! 저 너무 뚱뚱해서 자신 없습니다!” 울상이 다 된 남자가 마음 급한 듯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밧줄을 잡고 물을 건너야 하는데 자꾸 물에 빠지다가 포기한 것이다. 혼나고 투덜대고 넘어지다가 다시 마지못해 한 번 더…. 또 실패다. 홧김에 집어 던진 밧줄이 뱅 돌아와 머리를 때린다.
TV 앞에 앉아 “어휴, 저 고문관….” 하려다 대신 ‘빵’ 웃음이 터졌다. 조교한테 혼날까 봐 엄마 얘기를 하며 동정을 끄는데, 끌렸다. 샘 해밍턴이 예능에 안착하는 순간이다. 안착이 아니라 화려한 등장이고 자리 굳히기 완료다.
샘 해밍턴 등장 전엔 TV를 틀면 싸이만 보였다. 뚱뚱한 배를 볼록 내보이며 살 떨리는 춤을 췄다. “쟤 왜 저래?” 하면 ‘오빤 강남 스타일’이라며 허세를 떨었다. 하지만 강남에선 보기 힘든 모습이다. 포마드로 머리를 넘기고 다리를 ‘쩍’ 벌린 ‘겨땀’이 흥건한 남자다. 이 남자 진상이다. 밉상도 이런 밉상은 없다. 싸이는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미국에 가서도 진상을 부렸고 마돈나 앞에서도 뱃살을 보였다. 묘하게 정이 갔고 전 국민이 응원했다. 사실 전 세계가 그랬는지도 모른다.
드라마라고 예외는 아니다. 예능이나 음악보다 더하다. 말 그대로 드라마틱하다. 〈아내의 유혹〉의 변우민으로 시작했다. 얼굴에 검정 분을 칠하고 쓰레기통에서 기어 나왔다. 아내도 버리면서 온갖 불쌍한 척은 다 했다. 그런데 그럴수록 시청률은 올라갔다. 김혜수가 완벽한 여자로 나왔던 〈직장의 신〉 속 남자들도 그랬다. 깔끔했던 신하균도 마찬가지다. 〈내 연애의 모든 것〉에서 국회의원인 그는 대학생과의 토론에서도 흥분하고 삐친다. 소심하다.
백마 탄 왕자들의 전유물이었던 드라마가 맞나 싶다. 현빈이 트레이닝복만 입어도 여자들이 쓰러지던 그 드라마 말이다.
요즘 TV를 점령한 인물과 캐릭터는 모두 ‘지질’하다. 허술하고 허전하며, 진상이고 밉상이다. 그리고 모두 남자다. 남자들만 그렇고 남자들이 그러니 먹힌다. 여자들은 계속 똑똑해지고 딱 부러지는데 남자들은 지금 이렇다.
왜 그럴까? 남자인 내가 봐도 밉지는 않다. 그런데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 그냥 우습고 웃기다. 그냥 ‘빵’ 터졌을 뿐이다.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대체 ‘찌질한’ 남성들은 어디서 왔을까 책을 펼쳤다. 책에선 남자가 퇴화했다고 했다. 어디서 갑자기 온 게 아니라 천천히 퇴화한 거다. 오늘날의 남성과 고대 남성을 맞붙여놓으면 게임이 안 된다는 것이다. 고대 올림픽 권투 선수인 테오게네스는 22년 동안 1400번이나 게임을 했는데 알리는 고작 61번 싸웠단다. 우다베족 남성들은 좋아하는 색깔의 흙가루를 구하려고 1400킬로미터를 걷는 것이 문제도 아니라고 했다. 의지도 주관도 체력도 좋다. 고고학자가 쓴 〈남성 퇴화 보고서〉의 내용이다. 그러나 너무 먼 얘기였다. 얼마 전까지도 그렇지 않았는걸. 퇴화한 남성들이 TV 스타가 되기로 했다고 말할 순 없다. 퇴화한 게 웃겨서 TV를 차지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또 다른 책을 펼쳤다. 〈남성의 종말〉도 순전히 제목만 보고 고른 책이다. 산업사회가 끝나면서 남성성보다는 여성적 기질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왔다고 쓰여 있다. 침착함, 열린 의사소통이 여성에게 더 유리해 남자는 지질해졌다는 것쯤으로 이해해야겠다. 마지막으로 한 권 더 펼쳤다. 또 다른 책 〈남성 과잉 사회〉 속에선 남자들이 ‘지질’하게 된 건 성비의 문제 때문이라고 했다. 적정 성비를 초과해 태어난 남자들은 잉여가 된다는 것이다. 남아 선호 사상으로 성비 불균형이 심한 한국에서 살다 보니 이해가 됐다. 남자가 많으면 꼭 지질한 놈이 생기기 마련이다. 기억을 되짚으면, 남고 시절과 군대 시절에 처절하게 목격했다. 잉여가 된 적도 잉여를 본 적도 있어서 잘 안다.
그들이 이토록 관심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사회가 이렇게 성별에 혹은 인물의 캐릭터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나?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기 시작했을까? 가부장적이기만 하고 권위적이던 남자들이 자신을 내려놓고 한없이 까불고 망가지는 모습을 언제부터 용인하게 됐을까?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윤태진 교수는 말한다. “남성의 ‘권위가 무너졌다’거나 ‘권위를 내려놓았다’고 하는 건 ‘요즘 애들 버릇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허술한 남성들은 요즘 아빠로도 등장하고 있다. 〈일밤-아빠 어디가〉에 등장하는 남성 중엔 전형적인 아빠가 없다. 후가 지아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약 올리기 바쁜 윤민수도 그렇고, 준수가 잘못을 해도 혼내는 법 없이 방관하는 이종혁도 그렇다. 그렇다고 권위의 하락을 논하기는 힘들다. “〈아빠 어디가〉는 오히려 키덜트의 재등장이죠. 보통 정치적 현상이나 사회적 사건들을 가지고 인과관계를 조합해서 경향이라 결말 짓고 싶어 하는데, 그건 힘들어요. 대신 거꾸로 지나간 경향에 비춰볼 수는 있겠죠.”
TV는 원래부터 여성적인 매체다. 주 시청자층 역시 여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중심의 기획과 제작이 주를 이뤄왔다. 바라보는 시각도 여자의 입장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방송이 인물과 캐릭터에 집중하게 된 전기는 IMF다. IMF는 그동안 무서워 바라보기 힘든 아버지라는 존재를 무너뜨렸다. 미디어는 그 부분을 건드렸다. 아버지라는 인간을 바라보고 위로했다. 새로운 캐릭터도 필요했다. 권위라는 고루한 캐릭터에 재빨리 인간미를 불어넣어 포장했다. 그땐 어디에서나 아버지가 나왔다. 드라마 뉴스 할 것 없이 주제는 아버지였고 그들의 삶이었다. 위로와 응원이었다. 광고도 마찬가지였다. 대세 상품은 ‘아버지’였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을 관통하는 뚜렷한 흐름이고 경향이었다.
그런 다음은 어머니다. 딱히 경제적 회복과 연관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대중의 취향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책으로도 연극으로도 잘 팔렸다. 전형적인 모성을 강조한 〈마라톤〉도, 모성의 과잉을 말했던 〈마더〉도 모두 엄마다. 한동안 엄마, 어머니가 대세인 시절을 살았다. 2000년대 중반과 후반은 엄마와 함께했다.
그러다 다시 남자로 돌아온 것이다. 남성, 아버지, 남자들이 재등장하기 시작했다. 똑같을 순 없다.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와 결정적으로 다른 건 ‘아버지’가 아니고 ‘아빠’다. 아빠이고 ‘삼촌’이다. 없어도 채워주려고 했던 권위는 이제 탈권위로 바뀌었다. 누구 하나 튀지 않게 떼로 등장한다. 아버지를 무조건 이해하겠다고 했던 지난 흐름도 변화를 맞아 소통으로 바뀌었다. 웃기는 과정은 어쨌든 소통의 문제다. 소통의 과정에서 오는 부재와 다름의 차이가 웃음을 만들어낸다. 소통했든 하지 못했든 시도하는 과정이 밉지 않다. 〈아빠 어디가〉도 그렇고 〈일밤-진짜 사나이〉도 그렇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아빠는 친구 같다. 삼촌의 모습이기도 하다. 〈진짜 사나이〉의 샘 해밍턴은 외국인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저 고생을 하며 함께하려 한다. 지독한 고문관임에도 밉지 않게 보이는 이유다. 〈라디오 스타〉의 윤종신이나 김국진도 삼촌의 모습이다. 그들이 툭툭 던지는 농담과 장난은 삼촌들의 소통 방식이다. CJ E&M의 강희정 PD는 말한다. “지질한 모습은 일종의 동질감을 줘요.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있어요. 〈막돼먹은 영애씨〉도 그렇고 〈내 이름은 김삼순〉도 다 같은 정서죠. 그런데 결정적인 건 그런 모습이 남자에 투영될 때 더 효과적이라는 거예요. 버릴 게 많으니까.”
지질남의 대세가 동질감 때문인지 미디어의 흐름인지는 모른다. 지루해하던 대중이 찾은 색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어쨌든 지금 TV는 지질한 남자들이 점령했다. 그들에게 예능 신이 내렸다. 아들 덕도 보고 딸 덕도 본다. 아무렇게나 까불어도 웃기고, 운 좋게 얻어 걸리기도 한다. 지질한 남자들, 허술한 남자들 세상이다. 그들은 지금 흐름을 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