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처럼 요란하거나 자동차처럼 진부하지 않아 좋은 남자. 배우 김강우가 도시와 배역을 살아가는 방법.
Numéro, 2009년 5월
Photographed by Jono / 에디터│최태형 스타일리스트│남주희 헤어│이순철 at 순수 메이크업│햇님 at 순수 어시스턴트│이영표 스쿠터 협찬│R & C Vespa
김강우를 생각하면 딱히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슈트를 입고 서 있어도 장난스럽게 미소 지을 것 같고,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걸치고도 진지하게 사업 얘기를 할 것만 같다.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아 보이는 남자. 그가 슈트를 입은 채로 스쿠터 위에 앉은 이유다.
[Numéro] 생각보다 스쿠터와 친하시던데요?
[김강우] 스쿠터는 요즘 도시에서 가장 좋은 이동 수단인 것 같아요. 바이크처럼 부담스럽지도 않고, 자동차를 타면 항상 막히니까요. 게다가 요즘같이 좋은 날씨에 딱이죠.
반듯한 인상이라 ‘두 바퀴’는 싫어할 줄 알았어요.
아니에요, 좋아해요. 사실 자전거의 ‘두 바퀴’를 좋아하긴 하죠. 그런데 자동차는…. 남자들은 자동차에 굉장히 집착하고 많은 투자를 하는데 저에겐 ‘이동 수단’ 이상은 아니에요. 그래서 거기에 시간과 애정을 쏟지는 않아요. 오히려 스쿠터나 자전거처럼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들이 더 좋더라고요.
그럼 실제로 바이크를 타세요?
사실 좀 무서워했어요. 어려서부터 차 조심하라는 얘기보다 바이크 조심하라는 말을 더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연기를 하다 보니 바이크 탈 일이 있더라고요. 영화 <태풍태양>에 나온 스쿠터도 그렇고 더 큰 바이크도 타봤는데, 왜 남자들이 바이크와 스피드에 빠지는지 좀 알겠던데요.
오늘 비가 올까 봐 걱정했어요. 슈트 입고 스쿠터 타는데 비라….
그것도 분위기 좋았겠는데요? 비 오는 날씨 좋아해요. 금방 상쾌해지잖아요. 그리고 좀 차분해지는 느낌이에요.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요. 그리고 비 갠 다음을 자꾸 기대하게 되잖아요.
비 맞으면서 다시 한번 촬영해야겠는데요?
비 맞는 건 안 좋아해요(웃음). 서울이 정말 깨끗하다면 달랐을 수도 있겠지만요. 비 맞은 차들을 보면 새까맣잖아요. 예전에 뉴질랜드를 여행할 때 비가 왔는데 거기서는 맞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곳에서는 한번 비 맞고 걸어봐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도 들었고요.
‘네 바퀴’보다 ‘두 바퀴’를 선호하는 걸 보면 슈트보다는 캐주얼이 어울릴 듯해요.
(드라마 <남자 이야기>에서 슈트에 타이까지 갖춰 입고 나오다 보니) 오랜만에 캐주얼한 복장을 입으니까 좋으네요. 정장을 입을 때면 뭐랄까, 제가 ‘남자’라는 게 느껴져요. 아무래도 몸을 끊임없이 보게 되고, 옷매무새를 매만지게 되고요. 슈트는 남자들이 멋을 낼 수 있는 최상의 도구니까요. 남자들만의 ‘특권’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요즘 같은 계절에는 캐주얼이 편하죠. 개인적으로 진에 티셔츠 입고 스니커즈 신는 거 좋아해요. 카디건도 즐겨 입고요.
운동도 좋아할 것처럼 보이는군요.
삼성동에 사는데 조금만 나가면 한강이에요. 한강 변에서 걷는 걸 좋아해요. 요즘 날씨가 걷기에 딱 좋아요. 강턱에서 여의도까지 걸어가는 길이 있거든요. 두세 시간씩 걸어도 주변 풍경이 계속 바뀌니까 질리지가 않아요. 피트니스 센터야 누구나 다 다니니까….
영화 <태풍태양>, <마린보이>에서는 익스트림 스포츠나 수영도 곧잘 하던데요?
사실 과격한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위험한 것, 스릴에 매력을 못 느껴요. 대신 구기 운동 좋아하죠. 축구, 농구 이런 것들요. 그런데 사실 제가 단체 생활에 약해서 걷기, 자전거 타기, 등산처럼 혼자 하는 활동이 더 편해요. 그렇다고 막 새벽에 일어나서 산에 가고, 그런 부지런한 성격은 아니에요.
꽤나 부지런할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배역도 다 뭔가를 배워야 했던 역할이고요.
사실 제가 뭔가를 꾸준히 배우지 못해요. 한 가지를 진득하게 하지 못하고 금방 질리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배역이 아니었으면 저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었을 거예요.
그래도 슈트가 잘 어울리는 걸 보니 악기 하나쯤은 능히 다룰 것 같은데요? 드라마 속에서 피아노도 치시잖아요.
다룰 줄 아는 악기 없어요(웃음).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요.
그래도 보통 대학 시절에는 음악이나 잡기에 한 번씩 빠지기도 하지 않나요?
제겐 그런 감성은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음악도 필요할 때만 들어요.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을 때라든지… 제가 또 다혈질이라서요.
무의식적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생활하거나 TV를 켜놓는 일은 없겠네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못하는 성격이에요. 대부분의 남자들이 ‘멀티’와는 거리가 멀잖아요. 저는 더 심해서 음악을 들으면서 다른 일을 한다거나 다른 생각을 하는 게 어려워요.
그럼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어때요? 일 때문에라도 여러 사람들을 만나야 하잖아요.
사람들 만나는 건 좋아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는 건 싫어요. 기를 빼앗기는 것 같고 좀 힘들더라고요. 그런 곳에 가면 몸이 좀 아파요. 또 선천적으로 형식적인 자리에 참석하는 걸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술도 조촐히 모여 마셔요.
그러고 보니 ‘미니홈피’도 없던데요. ‘도토리’가 뭔지도 모르는 건 아니죠?
그 정도로 재미없는 사람은 아니에요(웃음).내 사생활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배우라는 직업을 떠나서 그게 ‘재미있을까?’ 하는 거죠.
자신의 얘기를 다른 사람들한테 잘 안 하는 성격인가 봐요?
그렇진 않아요. 친한 사람들과 있으면 다르죠.
왠지 걱정 끼치기 싫어서 혼자서만 고민할 것 같은데요.
절대 안 그래요(웃음). 저 되게 이기적이에요. 아는 사람들은 딱 막내다 그러죠. 주로 여자 친구와 많이 상담해요. 투정도 많이 부리고요. 저는 잘 모르는 게 많거든요. 예를 들면 미니홈피는 안 하니까 잘 모르고요. 이 넓은 세상에서 제가 아는 부분은 아주 좁죠. 여자 친구가 사람들과의 관계라든지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해결 방법을 잘 말해줘요. 세상 돌아가는 것도 말해주고….
가족과도 대화가 많은 편인가요?
집에서는 그냥 ‘한국 남자’죠. 그런데 저희 부모님은 모두 너무 가정적인 스타일이에요. 정말 세심하게 챙겨주시죠. 특히 아버지께서 어머니보다 더하세요. 다른 집은 보통 어머니가 그렇잖아요. 그런데 저희 집은 반대죠. 그래서 상담할 일이 생기면 아버지께 물어보곤 해요.
아버지와 살가운 관계란 말씀인가요? 남자 대 남자의 관계로 본다면 조금 어려운 관계일 수도 있는데요.
그렇죠. 어려운 존재죠. 그런데 연세를 드시면서 제가 이런저런 일을 상의하고 여쭤보고 그러면 좋아하시더라고요. 또 반년 전부터 제가 독립해 살게 되면서 일부러 더 그렇게 하려고 해요.
가족을 떠나 혼자 사는 건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외롭죠. 그런데 전 외로운 거 좋아해요. 약간 외로워야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요. 주변에 사람들이 많으면 생각할 겨를이 없잖아요.
그래도 밥은 혼자 먹기 힘들더라고요. 요리하는 것도 그렇고….
저야 뭐 대개는 밖에서 먹으니까요. 그래도 집에 있을 때는 ‘절대’ 배달시켜 먹지 않아요. 집에 있을 때는 되도록 직접 만들어 먹으려고 해요. 그렇다고 뭐 대단한 요리를 하는 건 아니고요. 영화 <마린보이> 촬영할 때 운동하면서 식이요법을 함께 했는데 그런 유의 음식을 해 먹죠. 밥도 제시간에 먹으려 해요. 그래야 덜 지쳐요. 또 스태프와 항상 같이 다니니까 제때 먹게 되더라고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신경 써야 하니까요.
겉으로 성숙한 남자들이 속으로 애정 결핍 같은 게 있다고 하던데….
그런데 어느 정도의 애정 결핍 증상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막내여서 그럴 수도 있고, 또 누구나 다 관심받고 싶은 건 당연한 거잖아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더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의젓해 보이고 싶어 하고요. 집에서는 지금도 ‘애’로 생각하니까…. 친한 사람들한테 “나 좀 첫째 같은 면이 있지 않냐?” 하고 농담식으로 얘기하기도 하는데, 그들은 딱 알죠. 100% 막내라는 거(웃음).
실생활에서 캐릭터의 영향을 받나요?
저는 실생활에서도 자신의 캐릭터나 이미지에 맞춰서 행동하는 것을 싫어해요. 그런 배우들 많잖아요. 그게 싫어서 오히려 반대로 하려고 해요. 지금처럼 좀 ‘다운’된 역할을 연기할 때면 오히려 장난도 치고 활발하게 생활하려 하고요. 일종의 밸런스를 맞추는 거죠. 평생 그 역만 할 건 아니잖아요.
캐릭터와 반대라면 요즘은 돈 관리가 허술하겠군요.
(웃음) 드라마에서 채도우는 주식을 좀 하죠. 그런데 실제로는 그냥 남들 하는 거 기웃거리면서 만날 상투만 잡을 뿐이에요. 그래서 손해 보고…. 펀드 같은 것도 주변 사람 이야기 듣고 따라 하긴 하는데 그렇게 재미는 못 봤어요. 그런 걸 하려면 이틀에 한 번씩은 확인도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그냥 넣어만 놓고 막연히 오르겠거니 하고 있어요. 바보 같죠. 관심을 가지고 열을 올려도 손해 보는 판인데….
돈에 관심이 없다면 자신만의 공간에 대한 관심은 어때요?
사실은 꾸밀 만큼 잘 갖춰진 집도 아니고 워낙 작은 집이기도 해서 그다지 신경 못 쓰고 있어요. 그리고 요즘은 집에 있는 시간도 별로 없고요. 독립을 한 것도 집이 서울에서 멀리 이사를 가서 급하게 한 거였죠. 집에는 정말 생활에 필요한 것만 있어요.
그래도 하나쯤은 집착하는 게 있을 것 같아요. 새 제품이 나오면 꼭 사야 한다든지….
보통 남자들은 전자 제품에 필이 ‘꽂혀서’ 새로운 걸로 바꾸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전 지금도 브라운관 TV 써요. 그런 것들에 대한 욕심이 없어요. 무언가에 집착해서 모으고 쉽게 어느 것에 ‘꽂히는’ 성격이 아니에요.
괜히 흘러나가는 돈은 없겠어요.
여행을 좋아해서 한번 여행할 때마다 돈을 다 써요. 준비 없이 훌쩍 떠나서 다 쓰고 오는 거죠.
지금도 훌쩍 떠나고 싶은 곳이 있나요?
요즘은 촬영 장소가 다 도시고 또 건물 안에서 촬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열린 공간으로 가고 싶어요. 산이오. 요즘 참 좋을 때잖아요. 그냥 숲에 가면 좋아요. 맑은 공기도 좀 마시고요. 드라마 촬영 때문에 갈 수가 없죠.
집에서 식물이라도 좀 기르시는 건 어때요?
집에 화분이 두 개 있는데 만날 시들시들해요(웃음). 그래도 보면 좋더라고요. 예전에는 꽃이 예쁘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요즘에는 예쁜 걸 알겠더라고요.
해외로 떠날 여유가 주어진다면 어느 곳으로 가고 싶어요?
음… 나폴리로 가고 싶어요. 바다도 있고 좀 시끌시끌하기도 한 게 사람 사는 동네 같잖아요.
모처럼의 휴식인데 조용한 곳에서 혼자 쉬고 싶지 않아요?
그렇진 않아요. 혼자 여행하면 사람이 우울해져요. 전 궁상 떠는 거 정말 싫어해요. 그렇다고 여행길에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친해진다거나 그런 것도 싫어요. 왜 외국 나가면 우연히 만나서 갑작스럽게 많은 대화를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 건 진짜가 아닌 것 같아요. 시간 날 때마다 같이 여행하는 친구가 있어요. 중학교 동창인데 이렇게 잘 맞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게 좋아요.
당신이 만약 서울의 ‘거리’가 된다면 어디가 되고 싶나요?
제가 거리가 된다면요?(웃음) 음… 재밌네요. 다들 뭐 가로수길이나 삼청동 이럴 거 같은데…. 아! 창신동이요. 예전에 <나는 달린다>라는 드라마를 창신동에서 찍었는데, 거기 일명 ‘달동네’에 성곽이 있어요. 그 성곽이 되고 싶어요(웃음). 저는 그 곳을 잘 몰랐거든요.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정말 멋진데 아는 사람들만 알죠.
배우가 그럼 안 돼요. 모두가 알게 드러내셔야죠.
저는 행운이 따른다거나 소위 ‘날로 먹는 스타일’은 아니더라고요. 노력을 해야 그나마 따라가죠. 내가 조금 노력했는데 더 큰 게 돌아오는 경우는 없어요. 이걸 빨리 깨달아서 참 다행이에요. 그리고 노력해서 얻는 게 좋기도 하고요. 제가 말한 그 성곽도 아는 사람은 좋은지 다 알잖아요. 노력하면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