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글/최태형 사진/이수현

바람 부는 벌판에서, 비 오는 산중에서도 먹어야 한다. 먹는 게 걱정이다. 해 지기 전에 불을 피우고 비가 내리면 어쩌나 걱정도 해가며 먹고, 먹인다. 오랜만에 ‘먹고사는’ 1차원적 문제로 고민하는 남자들이 늘고 있다. 매주 그렇다.

사실 지붕이 없는 곳에서의 먹을거리 문제는 본래 남자의 몫이었다. 본능적으로 시작된 이 의무는 기억도 할 수 없는 과거부터 그래왔다. 의중을 묻지도 않은 채 남자에게 의무가 던져졌고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지탄의 대상이 됐다. 얻는 것도 있었다. 남자들은 먹잇감을 사냥해 나누고 먹이는 행위로 권위와 권리를 얻었다. 그래서 남자로 태어나면 으레 입에서 입으로, 행동에서 행동으로 배웠다. 여자들이 성인의 과정이 닥쳐야 비로소 신체적 비밀을 딸들에게 전달하는 것보다 훨씬 은근하고 지속적이다. 싸움 놀이처럼, 전쟁놀이처럼 그렇게 누군가를 먹이는 기술도, 의무도 전달했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문제 될 게 없었다. DNA 속에 깊고 은밀하게 인수인계 시스템을 구축해놨으니….

이제 와서 갑자기 본능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회라는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서 바뀌어온 역할을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먹는 문제’는 이제 문제도 아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회에서 먹는 문제는 ‘어떻게’의 상위 단계로 넘어갔다. 동시에 남자만의 문제였던 먹는 문제가 ‘어떻게’가 붙으면서 여성이 더 힘쓰기 시작했다. 남자는 유형의 음식이 아닌 무형의 숫자, 돈만 벌어오면 되는 것이다. 그런 다음부터 어떻게 할 것인지는 여자가 담당했고 남자는 컨펌하면 그것으로 끝났다.

최근 주말만 되면 밖으로 나갔다. 트렁크 한가득 텐트와 캠핑 용품을 싣고 달렸다. 어떤 그릇을 살지, 어떤 주방 기기를 살지는 온전히 남자의 몫이 됐다. 남자의 조리 도구는 가벼운 건 한없이 가볍고 무거운 것은 10kg이 넘는다. 고르는 기준도 어떤 땐 노마드적 생존 법칙을 따라 ‘이동의 용이’였고, 어떤 때는 사냥 법칙에 따라 뼈도 자를 수 있게 억센 것 위주였다. 예쁜 것보다 기능적인 것을 골랐고, 날렵한 것보다는 우직한 것을 샀다. 우선 요리를 하려면 장작을 팰 도끼도 필요했고 주머니칼도 필수다. 남자의 조리 도구는 이렇다.

캠핑 사이트에 도착해선 우선 햇볕을 피할 그늘을 만들고 비를 피할 천장을 세웠다. 비와 바람을 피하는 목적뿐만 아니라 브랜드를 내세워 과시도 해야 한다. 옆집 텐트보다 저렴한 브랜드라면 바람 피하는 문제에 자존심의 문제도 더해졌다. 그런 다음은 날씨 걱정과 자연 걱정을 했다. 비가 와서 계곡이 물이 불진 않을까 걱정했고 뱀이나 벌의 습격도 고려해 자리를 골랐다. 노하우 전수도 필요하다. 아들에게는 벌을 피하는 방법을 가르쳐줬고 딸을 위해선 벌을 쫓았다.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마트에 들러 무엇을 먹을까 고민했다. 육질의 표면이 건조하지 않고 적당히 물기를 머금고 있는 것이 좋은 고기라는 것도 알게 됐다. 소금만 가지고 간을 했고 적당히 간만 맞으면 맛있었다. 남에게는 강요했다. 밖에서는 이런 것도 먹을 줄 알아야 한다고, 이것보다 더 못한 것도 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사실 그런 건 나도 먹어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먹어야 할 일이 있는지는 몰랐지만 그렇게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따르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아웃도어 캠핑 크루 ‘크래클러즈(cracklerz.com)’에서 야외 음식을 담당하는 이제혁은 말한다. “10년 전 요리를 공부하겠다고 르 코르동 블루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남자의 비율은 15퍼센트가 채 안 됐어요. 남자가 요리를 한다는 것의 인식이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남자들이 주말마다 나가서 요리한다. 캠핑이 유행이라고 요리까지 유행은 아닐 텐데 그렇다. 장비 자랑이 극에 달해서 그럴 리도 없다. “일종의 역할 놀이를 하는 거죠. 사실 한동안 남자들은 돈 벌어 오는 기계였어요. 그런데 그걸 자식에게 설명해줄 길이 없었죠. 임무는 있는데 권위는 떨어지는 거예요.” 하긴 아버지가 어떤 노고로 어떻게 나를 먹여 살렸는지 잘 알지 못한다. 밥 짓고 빨래하시던 어머니의 고생은 알아도 아버지의 노고는 몰랐다. “권위를 세우려고 요리하는 건 아니에요. 가르쳐주고 함께하고, 같이 먹는 과정을 공유하는 거죠. 그 대상이 자식일 수도, 친구일 수도 있어요. 그러면서 다시 가족의 일원이 돼 의사소통을 하는 거죠.”

새로운 남성상이 필요해서일지 그저 재미일지는 모른다. 확실한 건 먹는 걸 책임지는 남자들이 늘고 있다는 것. 굳이 바람 부는 벌판으로, 비 오는 산중으로 나간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남자들의 먹는 걱정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