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5년 10월
글/최태형 사진/국창근 헤어&메이크업/이소연

연극 무대에서 반짝이는 배우를 찾기란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생동감 넘치고 제철 고등어의 등처럼 파릇하기도 한 배우들이 대학로 거리에까지 넘쳐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컴컴한 무대에 불이 켜질 때만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에스콰이어는〉 무대 아래로 내려온 배우를 불러 세웠다. 이달 무대에 뿌리를 내린 듯 공연을 장악했던 배우를 만났다. 그 배우의 이름은 윤나무다.

윤나무는 2011년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내내 무대 위의 인물로 살았다. 대학로에서 쉬지 않고 오를 수 있는 무대와 배역이 있는 흔하지 않은 배우다. “졸업 후 지금까지 쉰 날을 따지면 3주가 되지 않아요. 연기는 일처럼 하면 안 돼요. 그렇게 되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거든요. 제가 선택한 일이었지만 너무 쉬지 않고 몰아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를 만난 거죠.”

그는 〈카포네 트릴로지〉의 무대에 오르기 위해 먼저 연출가를 찾았다. 배역을 기다리지 않고 찾아 나선 거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형식의 공연이었어요. 관객과 배우의 거리가 50센티미터도 안 돼요. 관객과 맞붙어서 호흡하는 거죠. 관객과 호흡하면 에너지가 배가돼요. 반대로 상대 배우에게는 더욱 집중해야 하고요. 상대 배우에게 집중하면 더 많은 시너지가 생기죠. 〈카포네 트릴로지〉는 지쳐 있던 제게 첫 작품을 연기했을 때의 기분을 느끼게 해준 공연이에요.”

윤나무를 무대에 서고 싶게 만든 인물은 바로 그의 아버지였다. 배우였던 아버지의 공연을 본 후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던 그는 진로를 바꿨다.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라 극장에 자주 다녔어요. 그렇지만 배우를 할 생각은 하지 않았죠. 너무 힘든 일이라는 말씀을 아버지께서 많이 하셨거든요. 그러다 고등학교 때 처음 아버지의 공연을 봤어요. 힘들다고만 하시던 아버지가 무대 위에서 굉장히 행복해 보였어요. 그때 배우가 되기로 꿈을 정했어요.”

그는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연기를 배운 적이 없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최민식 선배님을 보고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최민식 선배님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을지 궁금해서요. 저도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막연히 도전했어요.”

〈카포네 트릴로지〉의 배역을 맡기 전 윤나무에게 주어진 역할은 대부분이 우울한 역이었다. “〈삼등병〉에서 군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 역으로 데뷔했어요. 그리고 20여 편의 공연을 통틀어 밝은 역할은 아마도 〈카포네 트릴로지〉가 유일한 것 같아요. 그동안은 어떤 결핍이 있는 역할에서 다양한 모습을 끌어내려고 노력했어요. 저도 모르는 모습을 극 중에서 끌어내면 희열이 느껴져요. 어떤 역할이든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입체적인 모습을 끌어낼 수 있죠. 그때 배우로서 희열을 느껴요.

최근작 〈카포네 트릴로지〉는 윤나무를 한 단계 성장시켰다는 평을 받게 했다. “이번 연극은 한 작품 안에서 열 명 가까운 사람을 연기해요. ‘로키’ 편만 보더라도 여섯 명의 역할을 맡죠. 배역의 성격에 따라 기능적으로 그에 맞는 연기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전형적인 표현 방식대로 연기해야 하는 역할들이죠. 그동안 맡은 우울한 배역에도 웃음 포인트는 있었어요. 그걸 극대화해 입체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던 걸 이번 배역에서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스스로 재미있게 하니 평가도 좋은 것 같고요.”

윤나무는 지금 매우 행복하다. “행복하지 않으면 절대로 버틸 수 없어요. 실제로 행복하기도 하고요. 원한다고 모두 할 순 없는데 제겐 기회가 주어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더욱 최선을 다해 행복하려고 해요. 앞으로는 영화에서도, TV에서도 행복하려고 해요.

영화에서, TV에서 또 다른 모습을 보이길 원하는 윤나무의 뿌리는 여전히 연극 무대다. “배우가 배역으로 눈앞에서 살아 숨 쉬는 걸 보여줄 수 있는 매체는 연극이 유일해요. 내 눈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걸고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걸 볼 수 있는 건 연극뿐이잖아요. 거기에서 또 다른 영감을 줄 수 있다면 연극은 언제든 존재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