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글/최태형 사진/게티이미지
‘가만히 있으라’ 한마디에 세상은 멈췄다. 전국에 실시간으로 방송된 참사의 현장은 대한민국을 가만히 멈춰 세웠다. 뉴스를 지켜보던 시청자, 사고 현장을 지휘하던 해경 그리고 사건의 피해자 및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까지 저마다의 패닉에 휩싸였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부의 무능과 여기저기 튀어나오는 암적 소시오패스의 발언은 분열과 불안을 증폭했다. 이대로 모두 멈춰서 가라앉는 건 아닌지 불안이 확산됐다.
사건이 터지고 가장 먼저 멈춘 것은 방송이었다. 전대미문의 국민적 사고 속에 사건 발생 시점의 모든 방송은 뉴스 특보 체제로 돌아섰다. 사고가 점점 심각한 상황에 이르자 방송 역시 심각해졌다. 대부분의 방송 스케줄은 변경됐다. 그중에서도 예능 프로그램은 뉴스 특보 시간과 상관없이 결방 체제에 돌입했다. 전 국민적인 슬픔을 함께 나누고 추모한다는 의미다. 여기에 더해 예정된 콘서트, 록 페스티벌 등도 진행을 포기하거나 무기한 연기됐다.
한국만이 국가적 재난 상황이나 사고 앞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결방하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미국의 9·11테러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비행기와의 충돌로 무너졌을 때 미국 지상파에선 예능뿐 아니라 콘서트, 연극, 스포츠 경기의 편성이 취소됐다.
미국의 건국이념 중 중요한 철학 하나는 소수의 입장을 유린하는 다수의 횡포를 견제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특정 파벌의 이익과 획일된 열정이 사회 전체의 관심사를 뒤덮는 것을 막으려 애썼다. 이를 위해 엄격한 삼권분립, 양원제, 연방제 등을 고안했다.
미국의 방송은 이런 원칙을 따랐다. 또한 국민을 위로해야 한다는 합의가 있었다. 9.11테러 때 방송이 결방으로 보여준 추모는 단 4일이었다. 방송이 추도와 추모 아픔을 나누는 방식이 결방 하나인 것은 아니다. CBS, FOX, ABC, NBC 방송사들은 9월 15일 뉴스에 TV 오락 프로그램 편성을 정상화하는 것이 ‘국가적 의무’라고 말했다. 그러곤 그 주말부터 편성을 정상화했다. 방송사 간 협의를 나눈 끝에 합의한 내용이 있었다. 국가가 14일을 국민 애도의 날로 정하자 이 날을 지나 정상화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정보의 전달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이 방송을 통해 위로를 얻길 바랄 것이라고 했다. 미국영화협회장을 지내며 할리우드 영화의 세계화를 주도한 잭 발렌티는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어땠나? 대한민국의 결방은 또 하나의 무원칙일 뿐이었다. 어떤 방송국에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결방을 결정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같은 방송국의 예능이라도 결방 기간은 적게는 1주 많게는 8주 이상이었다. 시청률이 높은 것이 이유라면 그 또한 눈치 보기와 다를 게 없다. 결방에는 필연적으로 대체 방송이 편성되기 마련이다. 모든 결방된 예능이 뉴스 특보로 채워지지는 않는다. 여기서 또 한 번 방송사의 원칙 없음이 드러난다. KBS는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난 후 2주간 예능프로 〈인간의 조건〉을 결방했다. 〈인간의 조건〉은 개그맨 6인이 출연해 현대인의 필수 조건 없이 생활을 해보는 프로그램이다. 개그맨들은 결핍을 통해 웃음을 전달하며 그 속에 우리 삶에 필요한 게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한다. 〈인간의 조건〉을 대신해 편성된 프로그램은 영화였다. 결방 첫 주에는 영화 〈반창꼬〉가 방송됐다. 둘째 주에는 영화 〈차형사〉였다. 〈차형사〉를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코미디 장르에 포함된 걸 알 수 있다. 국민적 슬픔을 나누기 위해 예능 프로그램 대신 코미디 영화를 방송했다는 건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다른 방송국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SBS 〈정글의 법칙〉은 대체 편성으로 해당 프로그램의 스페셜을 방송했다. MBC의 경우는 〈아빠 어디 가〉와 〈진짜 사나이〉를 대신해 해당 방송국의 드라마를 재방송했다. 방송국들의 결방 목적이야 어떻든 하는 행태는 ‘예능’이라는 카테고리만 피하면 된다는 모습이다. 혹은 ‘결방’이라는 타이틀만 걸면 된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결방한 프로그램의 스페셜을 내보낼 순 없다.
이런 무원칙적인 대응들은 많은 문제를 낳는다. 작게 보면 방송이나 공연이 취소돼 피해를 받는 방송 및 공연 관계자들의 문제다. 방송 작가나 공연 기획 스태프들은 정직원이 아닌 경우가 많다. 기약 없는 결방과 취소 때문에 일상생활마저 위협받게 되는 것이다. 크게 보면 하나의 주제에 함몰된 국가 전체의 손해다. 세월호는 나라의 주요한 이슈와 쟁점을 함께 묻었다. 여러 정치적 이슈들과 사회적 논의들은 모두 뒤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원칙 없고 분별없는 눈치 보기식 결방은 국민이 방송을 통해 위로받고 치유할 수 있는 기본적인 기회를 박탈했다.
사건이나 사고가 터졌을 때 방송이 불똥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결방이다. 이는 위로의 방법이 아니다. 방송은 방송이 가진 강력한 힘으로 상처입은 국민을 위로할 더 큰 가치를 찾아야 한다.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앞서 말한 미국의 사례에서 답을 찾아도 좋다. 방송은 계속되어야 한다. 결방을 할 것이 아니라 예능만의 방식을 찾아 더욱 적극적으로 국민을 위로해야 한다. 언제까지 폐허에 쓰러져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진정한 공영방송이고 위로라고 볼 수 있다.
2014년 봄 방송은 사라졌다. 모두가 슬퍼할 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다. 이 봄은 팽목항의 날씨만큼이나 변덕스럽고 우중충한 봄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