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3년 (추정)
글/최태형 사진/장현우 촬영 협조/게임인 재단

세상을 바꿀 마법, 3D 프린터

공상과학 영화나 만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원하는 물건을 ‘뚝딱’ 만들어주는 기계다. 요술 지팡이를 내리치듯 ‘뚝딱’이다. 조그만 상자에 주문만 하면 물건이 나온다. 배가 고플 땐 피자를, TV 속 예쁜 옷이 갖고 싶을 땐 옷을 만들어낸다. 더 나아가 집을 뚝딱 만들기도 한다. 허무맹랑했다.

그러나 이런 기술은 ‘공상’이 아니다. 이미 ‘과학’이 된 지 오래다. 벌써 30년도 넘었다. 바로 3D 프린터다. 3D의 D는 ‘Dimensions’ 즉 3차원을 나타낸다. X, Y 축 평면이 Z축을 만나면 입체가 된다. 우리가 만질 수 있는 사물을 ‘프린팅’한다. 즉 그리듯 만든다는 뜻이다.

3D 프린터가 개발 단계를 거쳐 산업용으로 제작된 건 1980년대 후반이다. 미국 3D 시스템즈사는 빛에 반응해 굳어지는 수성 레진, 아크릴 등의 소재에 레이저를 쏘아 굳히는 방식(SLA 방식)으로 3D 프린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기술은 꾸준히 발전하고 사용되어왔다. 이제 3D 프린터는 소재뿐 아니라 방법도 다양해졌다. 경험도 쌓였다.

30년이나 된 기술에 갑자기 이렇게 주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다. 1992년 출시돼 보편적인 3D 프린팅 방식으로 자리 잡은 FDM 방식(재료를 녹여서 쌓아 만듦)의 특허가 2012년 만료됐다. 비슷한 시기에 3D 프린터에 대한 다양한 표준 특허들도 마찬가지로 누구나 쓸 수 있게 됐다. 이를 기점으로 3D 프린팅 기술이 오픈 소스화 되었다. 오픈 소스란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의 제작 원천 기술을 공유하는 것이다. 오픈 소스를 지향하는 영국의 비영리 단체 렙랩(RepRap)이 FDM 방식 3D 프린터 설계를 공유한 게 기폭제가 됐다. 이제 프로,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누구나 3D 프린터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억원을 호가하던 3D 프린터의 구매가 노트북을 사는 것 정도의 지출로 가능해진 것이다. 꿈속 기계가 현실이 된 이유다.

현재 3D 프린팅 소재는 플라스틱, 금속, 종이, 나일론, 고무, 세라믹, 초콜릿 등 다양하며 섬유 역시 소재의 한 종류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소재로도 삶의 필수 요소인 의식주를 만족시킬 수 있다. 3D 프린터가 삶의 일차원적 모습을 변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다. 3D 프린터의 가능성을 무한하다고 예상하는 것은 이런 일차원적 충족 때문이 아니다.

무엇으로 만드는가는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와 같다. 그리고 지금은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그 결과가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가 중요한 시점이다. 3D 프린터는 산업을 바꾼다. 산업은 문화를 바꾸게 되고 문화는 결국 모든 것을 바꾼다. 얼마나 폭발적일지 감이 오지 않는다면 18세기 말 산업혁명에 대입해도 좋다.

3D 프린터는 지난 10년간 인류가 웹을 통해 만든 디지털 세계를 현실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한다. 지난 10여 년의 디지털 혁명은 사람들이 모니터 속에서 세상을 바꾸게 했다. 그러나 한 가지 제조업의 변화를 이끌지는 못했다. 웹과 디지털은 컴퓨터가 있는 모두에게 개방된다. 그러나 제조업은 다르다. 제조업은 전문지식, 설비와 투자 그리고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대기업의 영역이다. 그런데 지금 3D 프린터가 이런 현상을 바꾸려 하고 있다. 디지털 세계가 꾸준히 원한 ‘현실’로의 갈망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이제 3D 프린터만 있으면 누구나 개인이 원하는 물건이나 아이디어를 직접 만들 수 있다. 개개인이 거대한 공장과 같아진다. 유통, 유통망도 무의미하다. 주문 받은 물건은 배송이 아닌 데이터로 전달한다. 집의 3D 프린터나 가까운 3D 출력소에서 바로 받아볼 수 있다. 〈메이커스〉의 저자 크리스 앤더슨은 이를 ‘제조자 운동(Maker’s Movement)’이라 부른다. 제조자 운동은 일차 산업혁명에 필적하는 규모로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산업의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혁명적일 수도 있다.

“충분히 진보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작가이자 미래학자 아서 C. 클라크의 말이다. 이제 누구나 마법을 쓸 수 있다. 마법사가 되든지 마법에 홀려 바보가 되든지는 개개인의 몫이다.

3D 프린터를 만날 수 있는 곳

◆ 자이지스트(xyzist.com)
자이지스트는 3D 프린터 지식 정보 포털을 표방한다. 3차원 입체를 만드는 축 X, Y, Z에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ist를 합성해 이름 붙였다. 자이지스트라는 이름처럼 이곳에서는 전문적인 정보와 유저간 커뮤니케이션을 함께할 수 있다. 3D 프린터에 대해 무지한 사람도 운영진이 정리해놓은 자료와 유저들이 공유한 정보를 확인하며 쉽게 개념 정리가 가능하다.

◆ 게임인 재단 3D LAB(gamein.or.kr)
게임인 재단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3D 프린터 체험 공간이다. 게임인 재단의 남궁훈 이사장이 3D 프린팅 기술을 미래 산업의 주요 요소로 판단해 만들었다. 3D 프린팅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는 3D 소스다. 현재까지 한국에서 3D 그래픽에 가장 밀접하고 친화적인 산업군을 꼽자면 게임 산업이다. 그들이 새로운 방향성 모색과 지식의 교류, 3D 그래픽의 교육 등을 위해 사비를 털어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