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메로 코리아>가 송윤아와 비밀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가 뭔가를 감추고 있거나 가려져 있어서는 아니다. 다만 비밀스러운 매력이 있어서일 뿐.

Numéro, 2009년 11월
Photographed by Park Kisook / 에디터│최태형 스타일리스트│정윤기, 최아름 at Intrend 헤어│박정심 at Musée, Neuf 메이크업│김활란 at Musée, Neuf 장소 협조│리츠칼튼 서울

송윤아는 언제나 단아한 모습으로 기억된다. TV 쇼 프로그램에 나와 농담을 주고받을 때도, 까칠하고 거침없는 ‘왈가닥’ 캐릭터를 연기할 때도…. 사람들의 기억 속 송윤아는 언제나 우아하고 비밀스러운 모습이었다. 영화 <시크릿>의 개봉을 앞두고 송윤아와 ‘비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옮겨 적은 말들도, 옮겨 적지 못한 말들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단아하기보다 세련되고, 비밀스럽기보다는 솔직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영화 <시크릿> 역시 그녀와 닮았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생겼다.

[Numéro] 오늘 본 모습과 그동안 ‘송윤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많이 달라요.

[송윤아] 이런 콘셉트의 화보를 진행할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화장도 그렇고 의상도 평상시에 이렇게 진하게 하지 않잖아요.

그렇죠. 송윤아 하면 공식처럼 따라붙는 ‘단아함’이 있죠. 오늘 보니 ‘단아함’보단 ‘왈가닥’ 쪽인데요.

하하하.

게다가 필모그래피를 봐도 ‘대박’ 작품은 모두 단아함과는 거리가 먼 역할이었어요.

맞아요. 다방 종업원 역할도 있었고, 최근 <온에어>의 ‘왈가닥’ 작가도 있었죠.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은 실제의 저를 보여주지 못하는 게 한이 된다고 할 정도로 의외의 면도 많아요(웃음). 그런데도 단아하다고 생각되는 건 ‘송윤아’의 이미지인 것 같아요. 저뿐만이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 혹은 방송을 통해 보이는 연예인들이 다 그럴 거예요. 자기 의도와 상관없이 생기는 이미지도 있고, 격식을 차리면서 갖추어야 하는 이미지도 있고요. 미디어를 통해 알고 있는 모습과 실제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이 있잖아요. 좋고 나쁨을 얘기하는 게 아니고요, 저도 조금 그런 부류인 것 같아요.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자기 의도나 보는 분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조금씩 어떤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거죠.

버라이어티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사람들이 눈치챘을 만도 한데….

사실 제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많이 출연하지 않아서…. 출연을 해도 1~2년에 한 번 정도로 텀을 길게 두고 나가니까, 실제의 제가 어떤지 충분히 보여줄 기회가 없는 거죠. 또 저를 꾸밈없이 보여줘도 문제가 있더라고요. 사람들은 저를 단아한 이미지로 생각하는데 쇼 프로그램에서 제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면 송윤아가 거짓 방송을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솔직히 그런 반응 때문에 속상한 적도 있었어요.

지금까지 사랑을 많이 받은 역할로 이미지가 굳어지기 마련인데….

저도 그게 참 신기해요. 저는 그동안 다양한 역할을 했어요. 코믹한 역할, 악녀 역할도 했고요. 드라마를 많이 한 편에 속해요. 저와 비교되는 다른 배우들과 견주어봐도 많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유독 ‘방방’ 뜨는 역할을 했을 때 작품들이 잘되었거든요. <미스터 Q>도, <종이학>도 시청률이 좋았죠. 영화도 말도 안 되게 ‘업’된 역할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상을 받기도 했고요. 그렇게 활발한 배역들을 사랑해주었으면서도 작품이 끝나면 다들 참한 송윤아만 기억하시는 것 같아요. 그건 제게 기대하는 이미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통 오랜 기간 활동한 연예인들을 볼 때면 막연히 아는 사람 같아요. TV를 통해 많은 소식을 접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당신은 15년을 활동했는데도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거의 매년 드라마와 영화를 했고, 신비주의 같은 것과도 거리가 먼데…. 아무래도 참한 이미지와 함께 내숭을 떨 수도 있다는 생각이 따라다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웃음).

내숭은 아니고 내성적일 것 같은 생각이었죠.

지금 좋게 돌려서 말하시는 거죠?(웃음)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렇게 참한 이미지만 남는 이유는 뭘까요?

그 질문에 답해야 하는, 혹은 그런 고민을 해야 할 시기는 이제 지났다고 생각해요. 한때는 그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 고민도 했죠. 일과 나에 대해, 그리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과 내게서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어떤 갭 같은 것에 대해…. 그런데 어느 날 훌훌 털어버리게 됐어요.

어떤 계기로?

이런 것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어, 라고 답하는 것은 거짓말인 것 같고요, 그냥 어떤 자연의 섭리인 것 같아요.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이제는 연기를 하면서도 조바심이나 불안 같은 것은 없겠네요.

지금은 없어요. 한때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제가 드라마를 많이 했고, 드라마로 대중에게 익숙한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영화를 좀 더 하고 싶었던 적이 있어요. ‘나는 이제 영화를 하고 싶어’, ‘나는 이제 영화를 할 거야’, ‘그런데 왜 자꾸 드라마 제의만 들어오는 거야?’ 이렇게 생각한 거죠.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게 자만이고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영화를 통해, 영화배우로서 제 스스로 만족할 만한 어떤 선까지 올라가야지하는…. 그런데 그즈음에 어떤 영화의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그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이 배역을 맡으면 상 받을 것 같다.’ 그 작품을 하면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을 것 같은 거예요. 여배우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데 못하겠더라고요. 그 순간 깨달았어요. 스스로 발을 담그지도 못할 거면서, 실천하지도 못할 거면서 허상으로만 어떤 자리를 바라고 있었구나 하는…. 현실적인 노력은 건너뛰고 그 자리를 꿰차고 싶었던 거죠. 오만이고 자만인 거잖아요.

뭔가 연기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겠어요.

정말 많은 걸 깨달았고, 동시에 연기자로서 겸손한 마음도 가질 수 있었어요. 실제로 그 작품에 출연한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받았는데, 진심으로 어려운 배역을 선택한 용기 있는 배우로서의 마음가짐, 배역을 빛낸 연기력을 존경하게 됐어요. 나는 그럴 자격이 없었던 거죠. 그러면서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제자리를 찾게 됐어요. 또 제 욕심만 가지고 어떤 작품에 뛰어들 경우 그걸 원치 않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됐죠.

예를 들면 이미지 변신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거라는 말인가요?

이미지 변신이 됐건 뭐가 됐건, 여러분이 아는 송윤아로 산 세월이 10여 년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준, 제가 가야 할 길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럼 최근 영화 <시크릿>은 어떤 길을 간 역할인가요?

<시크릿>은 지금까지 오간 이야기로 본다면, 이것도 저것도 피할 수 있는 중립을 지키는 영화예요. 저한테는 건전한(?) 역할인 동시에 매우 강렬한, 아주 좋은 영화죠(웃음). 더 자세한 얘기를 하면 스포일러가 될 거예요.

그럼 돌려서 질문을 해야겠군요. 어떤 기준으로 영화를 선택하나요? 역할을 고를 때 자신의 이미지를 고려하나요?

이미지를 변화시켜봐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시작은 시나리오를 보고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해요. 그다음에는 현실적인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죠. 뭐가 득이 될까 하는 생각이 아니라 작가, 영화사, 이런 것들을 고려하게 돼요. 저 혼자만 움직이는 일이 아니니까요. <시크릿>의 경우도 제가 맡은 지연이라는 인물은 사실 많이 등장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덮고 나니 지연이라는 인물만 기억에 남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역할이라면 해보고 싶다고 말했더니 매니저가 감독님께 전화를 드린 거예요. 감독님도 깜짝 놀라서 정말 송윤아가 이 역할을 하겠다고 했느냐고 되묻고…. 그래서 출연하게 됐어요. 지난 역할들을 생각해보면 다 느낌으로 결정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 ‘느낌’은 잘 맞는 편인가요?

잘 맞는 편이에요. 저는 ‘대박’ 난 작품도 많았지만 망한 작품도 많아요. 그런데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지만 망한 작품들은 망할 걸 알고 했어요. 망한다는 표현이 참 죄스럽긴 한데, 물론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흥행이 잘되는 것이 좋겠죠. 그런데 흥행이 잘되는 영화만 영화는 아니에요. 세상의 모든 상황은 어우러지는 것이죠. 어떤 영화를 할 때는 저뿐 아니라 감독도, 스태프도, 심지어는 영화 제작자도 매번 대박을 예상하지는 않아요. 각 영화마다 적정한 기대치가 있는 거죠. 흥행과 상관없이 여러 상황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 믿음을 가지고 같이 일을 해나가는 거예요. 1~2년 일할 사람은 아니잖아요. 평생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아요.

속이 아주 깊은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고요. 하긴 제가 화내는 모습을 볼 일이 없죠(웃음).

그렇죠. 당연한 말씀을(웃음).

화를 낼 때도 있긴 한 거죠?

그렇죠.

주로 언제 화가 나나요?

어떤 때? 그런 상황이 너무 많아서…. 하하하.

요즘은 인터넷이 참 문제일 때가 많잖아요.

그런 건 화가 나는 게 아니고 상처를 받는 거죠. 정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는 거예요. 누구인지도 모르는, 초등학생인지 성인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쓴 한 줄의 말들이 당사자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어요.

인터넷 문제가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니까요. 한 사람을 두고 불특정 다수가….

그런 것이 답답한 거예요. 사실이 아닌 것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하면 당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참는 것,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없어요. 대응하는 순간 문제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인지 이런 인터뷰를 많이 보지 못한 것 같아요.

화보를 많이 찍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히 인터뷰도 많지 않았어요. 드라마나 영화를 찍는 카메라와 이렇게 화보를 찍을 때의 카메라를 다르게 생각했죠. 사진 찍을 때의 카메라는 어렵고 힘들었어요. 큰마음 먹고 찍은 화보가 책을 보면 제 생각과 딴판인 적도 있어서 더욱 피했죠.

<웨딩드레스>라는 또 다른 영화에서는 엄마 역할을 맡았어요. 결혼도 했고요. ‘엄마’라는 단어가 이제는 좀 다르게 느껴질 것 같아요.

어릴 때 어른이 되는 상상을 하잖아요. 대학에 가면 뭐를 해보고 싶고, 연애도 해보고 싶고, 결혼도 해보고 싶고…. 그런데 지금의 제 나이는 어려서 제가 상상했던 어른 속에 없어요. 지금의 전 제가 상상했던 어른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었어요. 그런데도 아직 철이 없고 어린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제가 엄마를 대할 때 마음이 달라지는 거예요. 제가 어렸을 땐 엄마가 지금의 제 나이보다도 어렸는데, 그때도 그냥 엄마는 ‘엄마’라고만 생각했지 저처럼 많은 걸 하고 싶은 여자라는 것을 몰랐어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 엄마도 저처럼 하고 싶은 게 많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막연히 똑 부러지는 참한 엄마가 될 것 같았는데 지금은 친구 같은 엄마가 될 것 같아요.

그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맞아요. 어렸을 때부터 항상 그런 부러움이 있었어요. 제가 막내거든요. 게다가 그 시대에 저희 부모님이 일찍 결혼하신 경우가 아니었어요. 왜 예전에는 요즘보다 결혼을 훨씬 빨리 했잖아요. 학교 친구들을 보면 부모님이 너무 젊은 거예요. 친구 같고. 그런데 저 또한 나이 많은 엄마가 되겠죠. 그래도 친구 같은 엄마가 될 수는 있을 거예요. 제가 하는 일도 그렇고….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스스로에 만족하나요?

만족이라는 표현이 적합할지 모르겠지만 제 삶에 만족해요. 살아보니까,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누메로 코리아> 공식 질문이에요.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숫자는 무엇인가요?

저는 어렸을 땐 4를 좋아했어요. 다들 4를 너무 싫어하는 거예요. 그래서 4가 너무 불쌍해서…. 하지만 굳이 좋아하는 숫자를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Secret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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