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여성이 있다는 것, 또 다른 여성성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 인정받고 리드한다는 것. 16년간 엄정화가 보여준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Numéro, 2009년 7월
Photographed by Park Jihyuk 에디터│최태형 스타일리스트│정윤기, 신지혜 at INTREND 헤어│이경민 at 재선 메이크업│고유경 장소 협조│워터게이트 갤러리
우리는 그녀에게서 여성의 이미지를 빚지고 있다. ‘여성스러운’이라는 형용사를 매번 새로운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만든 엄정화.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그녀에게 여성에 대한 정의를 다시 쓰게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녀는 데뷔 이후 지금까지 독보적인 위치에서 여성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16년간 아이콘이었던, 그리고 여전히 ‘여성성’에 대해 함부로 정의 내리지 못하게 하는 그녀. <누메로 코리아> 창간 1주년 기념호의 테마 ‘icon’은 ‘confidential’을 통해 여성의 아이콘, 엄정화에게 묵직한 신뢰를 보낸다.
한 파티에서 당신을 처음 소개받았을 때 오랜 시간 ‘여배우’로 살아온 사람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경계심은커녕 오히려 너무 발랄해서요.
저는 항상 똑같은 것 같은데…. 또 분위기를 많이 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느끼는 저와 다른 사람들이 고정적인 이미지로 느끼는 제가 다르기 때문이겠죠. 저는 오랫동안 활동해왔으니 사람들이 다 저를 잘 알 거라는 착각을 하고, 반대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느낀 이미지만으로 저를 다 안다고 여기니까 그게 “의외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저는 기본적으로 무척 조용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촬영 전 큐레이터(갤러리에서 촬영을 진행했음)와 이야기했는데 당신이 눈물 많은 여린 여자 같다고 하더군요. 여자들에겐 여린 여자로, 남자들에겐 섹시한 여자로, 이렇게 적이 없어도 되는 건가요?
16년 동안 계속 활동해오면서 똑같은 모습만을 보이지 않아서 그럴 거예요. 어떨 땐 푼수 같기도 했고요. 전 어떤 느낌으로 제 자신을 포장하고, 뭔가를 가려서 행동하는 성격이 못 돼요. 그렇다 보니 실수도 많고 눈물도 잦았고요. 그래서 편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버라이어티 쇼에서 본 게 아마 제 이미지일 거예요. 무대 위에서만 철저히 계산된 모습인 거죠.
철저히 계산한다고 해도 ‘한국의 마돈나’라는 칭호는 아무한테나 붙이지 않아요. 그만큼 매번 다른 콘셉트와 느낌으로 리드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듯도 싶은데요?
완벽한 변신이라는 게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저는 즐기는 편이에요. 변화를 주는 것, 사람들이 변신이라고 말하는 걸 즐겨요. 제 성격상 변화를 주는 걸 좋아하고 같은 모습으로 있는 걸 지루해하니까 자꾸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거죠. 물론 1년에 한 번씩 앨범 내며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엔 부담스럽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즐기게 되더라고요. 후배들도 많고, 음반 시장이 좋지 않음에도요. 오히려 너무 선배가 되어버려서 방송할 때 부담스러운 건 있어요(웃음). 그래도 즐기려고요.
매번 앨범의 스타일링에 직접 다 참여하나요?
네 저는 저만의 직감이 있어요. 직감이 움직일 때 반응도 좋고 결과도 좋았던 것 같아요. 음악을 들었을 때 이미지가 떠오르거나 어떤 옷을 봤을 때 이번 노래랑 딱이다 하는. 어떤 스타일이나 느낌이 저에게 맞겠다 싶은 거요. 거의 맞았던 것 같아요. 이런 제 안의 직감을 굉장히 좋아해요. 6집 <퀸 오브 카리스마> 때는 빗나가기도 했지만(웃음).
앨범도, 연기도 굉장히 다작하는 스타일이에요. 영화가 아니면 드라마, 드라마가 아니면 앨범 활동으로 거의 쉰 적이 없어요.
다작이라도 겹쳐서 하는 건 아닌데 돌이켜보면 6개월 정도 쉬었을 때가 제일 긴 휴식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16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셈이죠.
아무리 즐긴다고 해도 가끔은 지칠 것 같아요.
지친다기보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디스코> 앨범 이후로 쉰 적이 없거든요. 너무 쉼 없이 일을 하니까 패션도 그렇고, 요즘 어떤 게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지 생각도 못하고 살게 됐죠. 그러다 보니 더럭 겁이 나는 거예요. “이러다 도태되는 거 아니야?” 하는…. 그래서 이번 작품 <결혼 못하는 남자>만 끝나면 좀 쉬려고 해요.
16년 동안 한결같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잖아요. 저조차도 당신이 마치 아는 사람 같아요. 당신만 알고 있는 자신의 이중성을 좀 알려주세요.
그다지 없는 것 같아요. 가끔은 저조차 ‘사람들이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워낙 TV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고 인터뷰도 많이 했으니까요. 그런데 정작 사람들은 모르는 부분이 많아요. 이중성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면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거겠죠.
그럼 최근 사람들이 나를 너무 모른다고 느꼈을 때는 언제예요?
제 성격에 대해서요. 인터뷰를 할 때 조용하고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게 낯설대요. 근데 제 생각엔 전 항상 이렇게 얘기했거든요. 제가 조용하다는 것에 대해 놀라더라고요.
사실 저도 파티에서 만난 이후 몇 번 전화 통화를 하면서 그때와는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혹시 우울증이나 조울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웃음) 저는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저는… 되게 ‘고요’해요. 사실 우리가 처음 봤던 파티 자리에서는 제가 술도 좀 마신 상태였고 좀 ‘업’되어 있기는 했죠(웃음).
연기, 가수 활동 둘 다 성공적이었어요. 즐기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는데요. 즐긴다고 다 성공적이지는 않잖아요. 당신만의 비법은 뭘까요?
정말 모르겠어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오래도록 꿈꿔온 일이라 항상 감사해서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어요. 지치더라도 제가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이런 생활에 감사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정말로 즐겨요. 너무 힘들고 피곤한데 그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요. 저는 무엇이든지 항상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으로 움직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아직도 성취하고 싶은 게 많고요.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연기에선 중요한 배우, 음악에선 아이콘인데 스스로 혼선은 없는지요?
아직도 제가 아이콘이 맞나요?(웃음) 혼선은 없어요. 그러니까 무대에 올라가면 저는 가수 엄정화이고 연기할 때는 배우예요. 그보다 혼선이라고 하면 가수로서 활동할 때 예전의 엄정화와 지금의 엄정화가 좀 혼란스러울 때가 있어요. 가끔. 그게 나이가 주는 혼란스러움인지, 아니면 굉장히 화려한 음반 시장 안에서 놀랄 만큼 빛났던 스스로에 대한 생각인 건지는 모르겠어요. 그런 시기가 있었잖아요. 포이즌, 몰라, 초대… 음반만 냈다 하면 잘됐으니까요. 나는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가수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고 최고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시기가 다 지난 게 아닐까 하는…. 예전과 반응이 다를 때나 나이가 들었다고 느낄 때. 거기에서 오는 느낌이 혼란을 줄 때가 있고 그래서 마음이 아플 때가 있어요.
그런 건 신경 안 쓸 줄 알았어요. 게다가 가끔 파격적인 모습으로 시상식에 설 때는 여전히 독보적이니까요. 간혹 그런 점에서 불필요한 말이 나기도 하지만요.
전 그런 소리를 들으면 궁금했어요. 그럼 나는 무대 위에서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가…. “나이가 있으니까 드레스나 정장을 입고 발라드나 해야 할까? 아니면 트로트를 해야 하는 거야?” 하고요. 저는 저란 말이에요. 무대 위에서는 그 노래를 표현해야 하고 그러려면 과감하게 입을 때도 있는 거고요. 무대 자체에 충실할 뿐이에요. 그게 뭐가 어때서요? 저는 그런 사람에게 반감을 가져요.
그 충실한 엄정화를 롤모델로 삼는 여배우, 여가수들이 많아요.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는 건 어떤 느낌인가요?
한 5년 전에, 이금희 씨가 진행하던 프로가 있었어요. 거기서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고 싶어요. 열심히 해서”라는 말을 하며 어떨까 생각해봤죠. 이제 그런 얘기를 가끔 듣기 시작했는데요, 제가 틀린 길을 걷진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가수 분야에는 제가 처음 데뷔한 시절부터 같이 활동했던 가수들이 지금은 거의 없어요. 그래서 서른을 훌쩍 넘으면서 나도 ‘없어져야 할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는데요, 저는 그냥 잘해내고 싶어요.
그렇다면 아직도 당신이 롤모델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요?
마돈나도 그렇고 카일리 미노그 같은 사람을 보면서 많이 부러워요. 일본에서 활동하는 제 또래의 여자 가수들도 그렇고요. 변함이 없는 환경들. 그런 걸 보며 자극받죠.
당신이 가지고 있던 철옹성 같은 아이콘의 위치를 위협하는 젊은 여가수들을 볼 땐 어때요?
전 이제 거기서 벗어났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굉장히 별개의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죠. 후배들에게 그런 식의 느낌은 없어요.
그럼 선배로서 왕관을 넘겨주고 싶다고 생각한 예쁜 후배는요?
이효리 씨 좋아요. 투애니원도 너무 잘하고요. 무대에서 빛을 내는 친구들인 것 같아요.
아직도 성공에 목말라 하나요?
목마르진 않아요(웃음).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하니까요. 요즘은 성공이란 단어보다 ‘멋있게’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죠.
성공한 여자일수록 남자가 원하는 여성으로서는 어려운 사람일 수도 있어요. ‘사랑’ 분야의 엄정화는 어떤가요?
글쎄요. 여자는 ‘사랑’ 그 자체니까요. 저는 사랑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런데 예전에는 항상 사랑에 목말라 하고 외로워했다면 지금은 좀 벗어났어요. 이제 뭔가 스스로를 찾고자 하는 거죠.
특히 이런 분야의 일은 고저가 심하잖아요. 알고 지내는 뮤지션은 자신이 왜 이런 감성, 감정의 기복에 사로잡혀 있는지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맞아요. 그런데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걸 이해하고 껴안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든지, 계속 싸우든지….
그럼 여태 만났던 남자들을 그런 감정들로 괴롭힌 입장이었나요?
그렇죠, 어느 정도는요. 그러나 연애를 할 때 이기적인 감정 때문에 힘들어했던 것 같지는 않아요. 모든 포커스가 오히려 상대방에게 있었던 경우죠. 상대방에게 못 맞춰주거나 상대방이 기뻐해주지 않으면 힘들어했던 집착. ‘업’, ‘다운’이 심했던 거죠.
16년간 중심 인물이었어요. 넓게 보면 연예계에서, 좁게는 이렇게 스태프들 사이에서도요. 리더이기도 하면서 항상 도움 받는 사람이기도 해요.
그런 느낌은 사람을 강하게도 약하게도 만들어요. 의존하던 때도 있었죠.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없으면 외출도 못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좀 달라졌어요. 그냥 그런 게 너무 싫은 거예요. 주위에 매니저나 스타일리스트에 둘러싸여서 움직이고 혼자는 아무것도 못하고…. ‘쿨’하지 않아요.
그럼 자신의 팀이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요? 오늘 촬영 스태프도 당신과 일한 일종의 팀이잖아요. 게다가 이렇게 급한 스케줄에도 흔쾌히 달려온….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항상 내가 주가 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게 됐을 때 혼란을 느끼거나 마음을 다칠 것 같아요. 이들에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중심 인물이 된다면 마음을 너무 많이 다칠 것 같아요. 그걸 어떻게 견뎌요.
그동안 떠난 사람도 많았을 것 같아요. 이런저런 이별도 겪었고요. 스스로 다잡는 방법이 있나요?
매니저도 그렇고 떠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죠. 옆에서 누나라고 부르던 매니저들, 언니 언니 하며 따르던 스태프가 참 많았죠. 정을 주다가 이별을 했다가… 많은 걸 겪었어요. 예전엔 그런 이별들로 마음 다치곤 했는데… 이젠 좀 능숙해졌어요. 너무 많은 걸 오픈하지도 않고, 마음 접을 수 있는 방법도 알게 됐고요. 그런 건 좀 슬프지만요.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는 골드 미스 역할을 맡으셨어요. 거기에서 오는 서러움은 없나요?
아니요. 전 아기 엄마 역할도 했어요. 제 나이 또래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건 배우로서 당연한 거죠. 가장 친한 친구인 이소라도 저랑 같은 나이예요. 근데 참 멋있어요. “소라야, 네가 있어서 참 좋다”라고 말할 정도로요. 최화정 언니도 보면 힘이 나죠. 다들 자신의 모습을 지키면서 멋지게 잘해가고 있어요.
영화 <오감도>에선 동성애 신을 선보인다고 들었어요. 수위가 높다던데….
그렇게 높지는 않은 것 같은데…. 거부감이 있지는 않아요. 언젠간 동참하고 싶었던 역할이고요. 기회가 왔고. 12일 동안 거의 잠도 못 자며 촬영을 했는데도 재미있었어요.
<해운대>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그 영화에는 여러 사람들이 나와요. 하지원, 설경구 씨가 메인이고요. 그 사이에 박중훈 씨와 저도 각자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요. 비록 주연이 아니더라도 역할 자체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나 임팩트가 있다면 전 좋아요.
꾸준히 영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영화 쪽에선 유독 상복이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시상에서 제외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어, 이런 영화로도 상을 타?”라고 생각한 적도 있죠. 그런데 타더라고요. 그래서 집착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오히려 제가 가진 느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 자신에 대한 즐거움, 행복을 느끼며 한다면 언젠간 정말 좋은 작품을 만나 많은 사람이 박수 쳐주는 일이 생기겠죠. 꿈꾸는 것 자체도 좋다고 생각해요.
얘기를 듣고 있으니 아직도 기대할 게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가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다행이에요.
가수, 연기자, 사업가 그리고 글도 쓰는데요. 도전하고 싶은 다른 분야는 없나요?
지금 뭘 더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벅찰 때도 있고요.
그래도 또 다른 분야의 아이콘이 되실 수도 있잖아요.
제가 뭐 10대, 20대의 아이콘이 아니잖아요, 이젠.
여성의 아이콘으로서요.
저도 그러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30대, 40대와 함께 나이 먹어가면서 제가 그 사람들에게 아이콘이 된다면 너무 멋진 일일 것 같아요. ‘멋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자체가 멋있을 수 있는 것이거든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지금부터는 그게 제 얼굴을 만들어갈 거라고 생각해요. 쉰 살이 됐을 때 제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얼굴과 모습이 달라지고 사람들이 저를 생각하는 모습도 달라질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제 스스로가 쩨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내면에 대해 생각해보고 또 사람들과의 관계도 생각해보고 있어요. 스스로 쉰 살의 제 모습이 기대돼요. 멋진 사람이 될 거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