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4년 9월
Photographs by KIM TAESUN
장보리가 딱 제 모습이에요, 오연서
SNS나 주변을 보면 가끔 부러울 때가 있어요. 저 사람들은 진짜 저렇게 멋지게 살까?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촬영 시간에 맞춰 스튜디오의 문이 열렸다. 오연서였다. 그녀는 검고 큰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들어와 그대로 메이크업 룸으로 향했다. 그녀가 눈인사를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메이크업 의자에 앉을 때까지 고개를 돌리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스태프 역시 그녀에게 인사할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는 것도….
오연서를 스튜디오에서 만나기까지는 몇 번의 약속 변경이 필요했다. MBC 주말 드라마 〈왔다! 장보리〉의 촬영이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현재 30퍼센트의 시청률을 넘나드는 주말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절정의 연기를 보이는 중이다. 총 50회로 예정된 드라마는 막 38회 차 촬영을 마친 상태다. 때마침 KBS 드라마 〈참 좋은 시절〉을 이기고 시청률 1위로 올라선 시점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은 약속이 영영 어그러질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날씨로 변경된 드라마 스케줄 덕에 서로 마땅한 시간을 잡기가 힘들었으니까. 그녀는 〈에스콰이어〉와의 촬영 직전까지 드라마 촬영을 해야 했고 다음 날 이른 새벽 또 다른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다. 보통은 짧은 잠을 청하거나 대본을 외워야 하는 시간이다.
메이크업 룸으로 향하는 그녀의 무심한 발걸음이 촬영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길 바랐다. 사실 극을 이끄는 주인공으로서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대본을 외워야 할 테니 예민하지 않은 것도 이상하다. 그게 스타의식 때문이라고 해도 딱히 할 말은 없을 것 같
기도 했다. 40퍼센트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해본 것(〈넝쿨째 굴러온 당신〉 이하 〈넝쿨당〉)도 모자라 또다시 시청률 30퍼센트를 넘기며 1등을 고수하는 배우는 흔치 않으니까.
다행히 화보 촬영은 순조로웠다. 그녀의 포즈는 대범하면서도 자연스러웠다. 촬영 내내 진지하게 모니터와 카메라를 응시해 ‘화가 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적극적이었고 때론 즐거워했다. 그리고 ‘무서우니 웃어달라’는 농담에는 목젖이 보일 만큼 밝게 웃었다.
처음에 화난 거 아니었죠? 스튜디오에 들어왔을 때 메이크업룸으로 직행해서 인사도 못 했네요.
인터뷰를 위해 마주앉아 던진 첫 질문이었다. 분위기 파악을 위해 눙치는 인사이기도 걱정이기도 했다.
“화장 안 했었잖아요(웃음). 화장 안 했는데 ‘생얼’로 막 들어오면 예의가 아니에요. 안 그랬으면 다른 분들이 아마 다 놀랐을걸요.”
다행이네요. 촬영 때도 하도 ‘시크’해서(웃음) 화났나 했어요.
“저 안 시크해요(웃음). 제가 초반에는 낯을 좀 가려요. 딱 들어왔을 땐 분위기가 어떤지 공기를 느끼는 거죠. 그리고 촬영 때는 좀 창피하기도 하고. 제가 살 보이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긴장도 했고요. 그래도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요.”
사실 그녀의 이미지를 생각해보자면 〈왔다! 장보리〉의 착해빠진 캐릭터보다는 〈넝쿨당〉의 얄미운 시누이 방말숙이 먼저 떠오른다. 데뷔 10년 차 무명에서 그녀를 건져 신인상을 안긴 캐릭터다. 방말숙이 워낙 개성 있어 사랑받은 이유도 있겠지만 그녀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 것도 한몫했다.
“말숙이보다 장보리가 딱 제 모습이에요. 저 촌년이에요(웃음). 실제로도 지방에서 왔고요. 장보리가 되게 촌스럽고, 말괄량이지만 밝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 있잖아요. 그래서 장보리 역할을 되게 하고 싶었어요. 제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고요. 저는 스스로 이런 모습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저를 말숙이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녀는 차가운 느낌을 주는 도시적인 외모와 달리 대화를 나눠보면 오히려 남동생 같았다. 말하는 걸 좋아하고 거침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오랜 연예계 생활 때문일 수도, 스캔들에 호되게 당한 탓일 수도 있다.
“조금 바뀐 부분이 없진 않아요. 원래 전 제 얘기를 많이 하는 성격에 술 먹는 것 좋아하고 사람들이랑 얘기하는 것도 정말 좋아했어요. 그런데 2012년 〈넝쿨당〉이 잘되고 나서 제가 했던 얘기들이 등 뒤로 꽂히더라고요. ‘너 성격 진짜 좋다. 너 진짜 되게 활발하고 솔직하구나’라는 말들이 왜곡돼서 되돌아오는 거예요. 나는 친해지고 싶어서 다가갔는데 사람은 내 생각과 다를 수도 있겠구나, 실망한 적도 있긴 해요. 또 개인적인 것들이 노출되어서 제가 스스로 마음을 정할 수 없거나 손쓸 수 없게 되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에 조금 조심해진 건 맞아요. 그렇다고 제가 말숙이 같아서 그런 건 아니에요.”
오연서가 ‘시크’해 보였던 건 말숙이 같아서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여서 그랬다.
“세 보인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오히려 겁이 많은 스타일이에요. 아직도 촬영이 겁날 때도 많아요. 어떤 감정으로 연기해야 하는지 모를 때요. 내내 걱정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집중해서 잘될 때가 있어요. 그럼 또 무척 기뻐요. 이제 드라마에서 제 캐릭터의 연기도, 내용도 많이 바뀌어요. 촬영 중이라 말해드릴 순 없지만 또 걱정하고 있어요.”
그녀는 걱정이라고 했지만 현재 드라마 주 시청자 층인 아줌마, 아저씨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어른들은 반응이 직접적이에요. 예쁘다고 엉덩이를 때리기도 하시고 손도 잡으시고요. 장보리 보는 게 일주일의 낙이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을 만나면 정말 뿌듯해요.”
사실 주말 드라마는 미니시리즈와는 다른 면이 있다. 미니시리즈가 청춘 스타를 배출한다면 일일 드라마와 주말 드라마는 아줌마 부대를 움직인다. 미니시리즈가 감성을 건드리는 것에 능하다면 주말 드라마는 막장을 보여주는 것에 능하다. 점 하나 찍고 다른 사람이 된 〈아내의 유혹〉이 막장을 일종의 장르로 만든 까닭이다. 참고로 〈왔다! 장보리〉는 〈아내의 유혹〉 김순옥 작가의 작품이다.
“사실 저도 스타가 되고 싶을 때가 있어요. 망가지는 것보다 멋있는 배우로 보이고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중요한 건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캐릭터가 좋은 게 가장 중요해요. 지금도 장보리 덕에 제 이미지가 많이 착해지고 좋아졌어요. 사랑도 많이 받고요.”
그녀는 낯을 가리지만 솔직했고 조심스럽지만 적극적이었다. 서울 깍쟁이 같은 세련됨보다는 오히려 풋풋하고 친근했다.
“전 가끔 SNS에 멋진 글이나 사진을 보면 부러워요. 난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별 볼일 없는 날이 부지기수인데…. 집에서 그냥 트레이닝복 입고, 밥 먹고 TV 보다가 피부과 들러 촬영장 가면 하루가 끝날 때가 많은데요. 그 사람들은 매일 정말 저렇게 멋지게 살까 궁금해요. 다른 배우와 함께 일하면서도 궁금할 때가 많아요. 정말 멋진 생각만 갖고 살까? 물론 사람마다 지향점과 본질이 있지만 그래도 전 사람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들 얕은 면이 있잖아요. 나쁜 뜻이 아니라 그냥 재미있는 거 좋아하고 농담 좋아하고요.”
그녀가 촌년이라고 스스로를 지칭했을 때, 멋진 사람이 부럽다고 했을 때 깍쟁이 방말숙이 순둥이 장보리처럼 보였다. 30퍼센트를 넘기고 있는 드라마의 여주인공인데 막냇동생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 시간여의 대화로 그녀를 파악할 순 없겠지만 솔직하고 털털한 장보리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래서 좀 독해지라고 말해줬다. 이제 〈왔다! 장보리〉에선 좀 독해지겠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