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4년 10월
글/최태형 사진/조보근
정원 일의 즐거움
흙을 밟기도 힘든 도시에서 가드닝은 초현실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흙을 만지고 싹을 틔워 꽃을 맺는 일은 도시에서도 가능하다. 오히려 도시에 더욱 필요하기도 하다. 욕심만 버린다면 누구나 가드너가 될 수 있다.
가드닝(Gardening)을 배우겠다는 말에 주변의 반응은 다양했다. 종합해보면 ‘남자가 무슨 꽃꽂이냐?’는 핀잔, ‘기왕이면 상추를 심어 쌈이나 싸먹자’는 농담, ‘화분 하나 놓는 걸 거창하게 배우기까지 하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으로 압축됐다.
나 역시 가드닝을 배우기 위해선 플라워 숍을 찾아야만 한다는 점(대부분 플라워 숍에 가드닝 수업이 있다)이 아쉽긴 했다. 무엇을 키워야 할까 고민이 되기도 했고, 물 주는 것 외에 배워야 할 게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내가 가드닝을 배우고 싶어진 이유는 명확했다. 혼자 살며 늘어난 책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매일 습관처럼 먼지를 털고 청소기를 돌리는 일, 주말이면 거르지 않고 이불을 볕에 말리는 일은 단순히 집안일이 아니다.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책임이 됐다.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빨래, 싱크대를 가득 메운 설거지는 그래서 나의 무책임의 지표다. 무엇인가를 책임지는 게 남자라면 집안일이라고 남자의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때 모히토 칵테일을 만들기 위해 사다 놓은 애플민트가 발단이 됐다. 모히토를 만들어 먹고는 잊고 지내던 화분이었다. 창문을 열고 먼지를 털다가 덩달아 물을 주었을 뿐인데 다시 건강한 잎을 내 주었다. 기대하지 못한 만족감이었다. 집들이로 선물 받았던 처치 곤란 화분들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꽃을 꺾어 예쁘게 배치하는 게 꽃꽂이라면 가드닝은 살아있는 식물을 키워내는 일이다. 식물의 기질에 따라 흙을 고르고 습도와 온도를 조절해 예쁘게 자라게 만드는 것. 해를 넘겨 반복되는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거다. 그러기 위해선 식물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가드닝을 배워야 하는 이유다.
요즘은 미니 가드닝이 인기다. 거창한 정원이 필요하지 않다. 집안 공간의 특성과 식물의 기질을 잘 배치해 사람과 식물 모두가 건강할 수 있게 만든다. 주로 잠을 청하는 안방에는 밤사이 습도를 조절해줄 허브나 수상 식물, 밤에도 산소를 배출해 자는 동안 머리를 맑게 해주는 산세베리아를 두는 식이다. 건조한 곳에 두어야 할 식물과 습한 곳을 좋아하는 식물을 분리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식물을 통한 인테리어 효과도 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식물을 가꾸고 정원을 가꾸는 일은 남자의 일이었다. 정원을 가꾸며 풍류를 즐기고 심신을 정화하던 조선의 선비 정약용도, 여름이 순식간에 물러나는 것을 아쉬워하며 정원 일의 즐거움에 대해 글 쓴 헤르만 헤세도 그렇다. 그리고 작은 것에 관심을 두고 섬세하게 하루를 사는 도시의 남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가드닝은 남자의 일이다.
GARDENING TOOLS
1 전지가위 > 나무나 풀의 가지를 자르는 전지가위는 가드닝에 꼭 필요한 만능 가위다. 곡선 형태의 튼튼하고 야무진 칼날 덕에 웬만한 굵기의 나뭇가지도 힘을 들이지 않고 자를 수 있다. 1만3000원대 도루코.
2 사슴 가죽 장갑 > 작고 뾰족한 공구를 다루어야 하는 경우라면 소가죽보다 사슴 가죽의 장갑이 좋다. 사슴 가죽은 소가죽에 비해 부드럽고 말랑하기 때문에 훨씬 정밀한 작업을 할 수 있다. 물론 날카롭고 예리한 칼날로부터 손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은 기본이다. 5만원 카이맨코리아.
3 데님 앞치마 > 두 손을 이용해 흙과 식물을 자유자재로 만지고 가꾸려면 공구를 담을 수 있는 앞치마가 필요하다. 가드닝 앞치마를 고를 때는 가죽 소재보다 데님이 낫다. 물과 흙을 쉽게 털거나 세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죽보다 가벼워 몸을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10만9000원 맨케이브.
4 모종삽, 호미 > 파머스러브레인은 식재료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가드닝 브랜드다. 가드닝과 농사를 통해 생산적인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제품을 만들고 디자인한다. 모종삽, 호미 하나에도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다. 미니 가드닝에서 흙을 고르거나 다지는 일, 화분에 흙을 채우는 일 등은 모종삽과 호미면 충분하다. 각각 2만9000원 3만4000원 파머스러브레인.
5 부츠 > 실내에서 이루어지는 가드닝의 경우 필요하지 않겠지만 실외의 경우 꼭 필요한 아이템이다. 부츠의 목적은 물이나 흙으로부터 발을 보호하는 것만이 아니다. 날카로운 공구를 떨어뜨리거나 밟았을 때에도 발을 보호할 수 있다. 또한 뱀 등의 공격으로부터 발목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19만8000원 헌터 by 라움에디션.
6 원예 가위 > 다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원예 가위는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공구다. 얇은 나뭇가지나 식물의 뿌리도 곧고 뾰족한 날로 쉽게 처리할 수 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고 가벼운 제품이 좋다. 3800원 디앤디파트먼트 서울.
7 롱피스톨 분무기 > 1940년부터 스프레이 펌프를 만들어온 후루플라의 분무기다. 독자적인 분무 구조 덕분에 미세한 안개처럼 물을 분사할 수 있다. 약하고 연약한 식물이 물의 무게에 의해 상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끝이 꺾인 형태의 얇고 긴 노즐은 손이 닿지 않는 식물의 뒷면에 물을 분사하기 쉽게 고안되었다. 2만5500원 후루플라 by 디앤디파트먼트 서울.
8 공구함 > 쇠로 만들어진 공구 상자다. 공구를 공구함에 넣어두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평평한 윗변에는 요철이 있어 여러 개의 공구함을 쌓기도 좋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공구를 보관하기에도 가지고 이동하기에도 적격이다. 3만3000원 트러스코 by 디앤디파트먼트 서울.
가드닝을 배울 수 있는 곳
오드리 플라워 Audrey Flowers
영국에서 플라워와 가든 디자인을 전공한 오드리가 식물의 생태에 대한 이론과 다루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알려준다. 플로리스트 과정과 가드닝 수업 모두를 진행하기 때문에 관심에 따라서 꽃과 식물 모두를 배울 수 있다. audreyflowers.co.kr
틸 테이블 Teal Table
이 곳은 식물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식물을 통한 실내 디자인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자체적으로 디자인하고 생산하는 세라믹 화기와 다양한 종의 선인장이 특히 이곳만의 장점이다. http://tealtabl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