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5년 8월
글/최태형

다음카카오가 카카오톡(이하 카톡) 메신저 안에 ‘채널’이라 이름 붙인 콘텐츠 서비스를 선보였다. 카톡에 탑재한 일종의 콘텐츠 플랫폼이다. 콘텐츠를 짧은 카드 형태로 만들어 몇 번의 스와이프로 스마트폰에서 보기 쉽게 제공한다. 이미 피키캐스트나 몬캐스트가 ‘우주의 얕은 지식’을 외치며 만들고 있는 매우 짧은 마이크로 콘텐츠다. 다음카카오마저 자극적인 사진을 담은 몇 장의 카드를 콘텐츠로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는 국민 대부분이 사용하는 카톡이 선택한 보편적 콘텐츠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바꿔 말하자면 전 국민이 더 이상 긴 콘텐츠를 읽지 않게 됐다는 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지하철에서 문고판 책이나 잡지를 읽는 모습이 흔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 가판대에서 판매하던 신문이나 주간지는 겨우 명맥을 유지할 뿐이며 이마저도 보기가 쉽지 않다.

미디어는 언제나 변화를 거듭해왔다. 인류가 기원전 3000년 전 동굴 벽에 처음 그림을 그린 후 점토 판을 만들고, 종이를 만들어 책으로 묶기까지 수천 년간 쉬지 않고 변해왔다. 책은 인류가 지식을 전하는 가장 보편적 단위가 됐다. 15세기에 활자가 발명돼 책을 찍어내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급격한 발전을 이뤘다. 책은 종교 개혁과 과학 발전의 촉진제였고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의 발판이었다. 인간의 가장 혁명적이고 오래된 지식 전달 도구가 책이었다.

인간의 고민은 더 다양한 지식을 더 작은 미디어에 어떻게 넣을 것인가였다. 처음 점토에 문자를 새긴 후 좀 더 쉽게 휴대하기 위해 파피루스를 만들었고 그 후 양피지를 발명해 책 형태로 묶은 이유다. 종이와 활자를 만들어 작은 글씨로 한 권의 책을 만든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이처럼 미디어가 형태를 바꿀 때마다 지식은 더 큰 영향력을 확보했다. 사람들은 한 면의 동굴벽화를 보는 것에서 300쪽 분량의 책을 읽을 수 있게 진화했다. 사고와 사색이 덩달아 발전한 건 당연하다. PC와 스마트폰의 탄생은 인간의 지식이 닿을 수 있는 영역을 기하급수적으로 확장시켰다. 그런데 지금 다시 콘텐츠의 단위가 짧아지고 있다. 스마트폰, e북을 통해 수천만 권의 책을 가지고 다니며 볼 수 있을 거라던 기대와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누구도 스마트폰을 통해 e북을 읽기 원하지 않는다. 지식을 전달하는 미디어가 책에서 스마트폰 혹은 e북으로의 진화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지식의 바통이 책에서 스마트폰으로 온전히 전달되지 않은 모양새다. 그러는 사이 책이라는 미디어의 쇠락만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처음 포털 사이트(이하 포털)로 대변되는 IT 업체들이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었을 땐 콘텐츠 플랫폼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첫 시도는 뉴스였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포털은 온라인에서 뉴스를 무료로 제공했다. 신문사에서 100만원에 뉴스 콘텐츠를 구매해 그 이상의 광고를 붙여 파는 식이었다. 많은 방문자를 돈으로 환전하기 시작한 동시에 유통만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거다. 이때까지는 일종의 윈윈이 가능했다. 콘텐츠 제작자는 포털의 영향력을 이용해 더 많은 독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포털은 플랫폼 제공자의 입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유통만으로 돈을 벌었다. 포털은 더 나아가 모든 콘텐츠를 같은 방식으로 유통하길 원했다. 영화, 음악, 패션… 포털은 그야말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백화점이 됐다. 포털 속에서 콘텐츠의 평가는 정량화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얼마나 많은 클릭이 일어나는지, 페이지가 얼마나 리프레시 되는지다. 이는 더 많은 광고를 팔기 위해서다. 여기서 콘텐츠 제작자와 포털 사이에 가치가 상충한다. 포털은 긴 콘텐츠를 원하지 않는다. 오래 읽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면 그만큼 회전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루에 수천만 명이 찾는 포털의 메인 페이지에 말장난 같은 콘텐츠가 걸리는 이유다. 제목으로 낚시를 하는 이유다. 누구나 한 번쯤은 ‘보자마자 빵 터지는 사진’이라는 콘텐츠를 본 적이 있을 거다. 제목을 클릭하면 봉투가 터진 빵 사진이 덩그러니 올려져 있다. 전통적인 콘텐츠 제작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포털에는 효자 상품이다. 1초 만에 콘텐츠를 읽고 또 다른 클릭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탐사 보도, 특종 보도도 클릭이 나오지 않는다면 좋은 콘텐츠가 아니다. 회전율이 낮은, 즉 가치가 낮은 콘텐츠라는 뜻이다.

한동안은 포털도 책이나 잡지, 영화를 그대로 담으려 했다. 그러나 포털 입장에서는 긴 콘텐츠가 경제적일 리 없었다. 즉 아무리 고급 지식이 담겼다 해도 초당 수십, 수백 클릭을 만들며 광고를 파는 빵 터지는 사진보다 못하다는 말이다. 그 결과 만들어낸 것이 바로 카카오채널, 피키캐스트, 몬캐스트로 대표되는 카드형 콘텐츠다. 플랫폼 사업자의 우위를 이용해 이제 직접 콘텐츠를 입맛에 맞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영화도, 책도, 심지어 고전마저도 한 장의 카드 형태로 편집해 제공하길 원한다. 드라마 역시 1분 단위로 짧게 잘라 보여주거나 그마저도 움직이는 사진인 ‘짤방’으로 보여준다. 콘텐츠의 질이 아니라 플랫폼의 경제성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천 년간 유지해온 지식 전달의 안정적인 단위마저 모두 돈에 의해 바뀌고 있다. 다시 동굴 벽화 같은 짧고 단순한, 자극적인 콘텐츠로 회귀 중이다.

미디어는 언제나 변해왔다. 변화하는 과정에선 언제나 걱정이 뒤따랐다. 라디오가 생기면 책을 읽지 않을 거라 했고, TV와 영화가 생기면서는 라디오 스타를 모두 죽일 거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미디어가 모습을 바꿀 때마다 지식은 더 큰 영향력을 확보해왔다. 매체가 늘어날수록 지식의 양도 많아졌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지식, 즉 콘텐츠 제작자에 의한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는 점이 우려된다. 콘텐츠의 이동을 거머쥔 플랫폼의 입장이 반영된 콘텐츠 단위의 변경이기 때문이다. 우려가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독점 플랫폼 사업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짧아진 콘텐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