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은 온통 캠핑으로 들끓었다. 산도 들도 모자라 둔치까지 점령한 텐트가 그렇게 보기 싫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야영’에 빠져 있던 게 몇 년짼데 이제와 유행 따라 캠핑 간다는 말을 듣다니…. 참을 수 없어 여름 캠핑은 보이콧했다. 그래 캠핑의 꽃은 겨울이니까!

Esquire Korea

최근 몇 해는 집 밖으로 나가서 자는 것에 빠져 살았다. 물론 집 밖에서 자는 것에 맛들린 게 한두 해 얘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밖에서 자는 것의 위상은 천지차이로 달라졌다. ‘잠만은 집에서 자야 사람 새끼’라던 부모님의 구박도 없었고, 잠깐만 ‘쉬고 가자’며 구차하게 조를 필요도 없어졌다. 집 밖에서 자는 게 트렌드가 됐는데, 유행에 민감한 내가 밖에서 자는 건 이상할 게 없었다.

몇 해 동안은 캠핑과 서핑에 빠져 살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이미지에 빠져 있었다. 포틀랜드 스타일은 어떻고 하와이 서퍼는 어떻다며 온갖 인터넷에서 본 이미지를 입으로 떠들었다. 캠핑 크루를 만들어 여행을 도모하기도 했는데 사실 아줌마 산악회와 다를 게 없었다. 산보다 산 밑에서 먹는 막걸리가 당기고, 예쁘게 차려입은 등산복을 탐내는…. 우리는 한국에 없는 독특한 텐트에 정신이 팔려 웃돈을 주고 수입하기도 했고, 서프 보드도 샀다. 크루만의 멋진 아이덴티티가 필요하다며 옷에 붙일 와펜을 1000장이나 만들기도 했다(크루는 5명이다). 이렇게 예쁘게 만든 로고를 덕지덕지 붙이고는 ‘야영’은 술집에서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면서도 캠핑 동호회냐고 묻는 말에는 곧 죽어도 ‘아웃도어 크루’라고 응수했고, 그래서 그게 뭐냐고 되물어오면 ‘매니페스토’를 들먹이며 떠들었다. 그냥 그게 더 멋져 보여서 그랬다.

지난여름은 캠핑 대란이었다. 다들 산도 들도 모자라 한강 둔치까지 텐트로 뒤덮었다. 그래서 안 갔다. 기분이 나빴다. 온라인에 줄 서 캠핑…

사이트를 예약하는 것도 짜증스러웠지만, 그보다 혼자만 알고 있던 멋진 술집을 단체 회식 손님에게 빼앗긴 기분이었다. 여름 캠핑은 보이콧했다. ‘캠핑의 꽃’은 겨울 캠핑이다.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캠핑 마니아들은 다 안다. 캠핑 중 내리는 비는 불청객이지만 눈은 손님으로 친다. 흰 눈밭을 다져 텐트 치는 것은 또 어떻고. 그래서 떠났다. 겨울 캠핑은 처음이었지만 기대는 컸다. ‘오늘은 눈이 올까?’ 생각하며 닥치는 대로 차에 실었다. 텐트는 꼭 필요하고, 동계 침낭은 없지만 아직 영하의 날씨는 아니니 아쉬운 대로 여름 침낭을 챙겼다. 카우보이들이 모닥불에 올리던 주물 냄비인 더치 오븐에는 뭐를 넣어도 맛있다는데…. 엄마도 나도 아끼는 르크루제 냄비로 대신하기로 했다. 화로, 세면도구, 잠자리는 예민하니까 스펀지 매트, 음악도 빠질 순 없어 보스 블루투스 스피커까지 챙기니 제법 모양새가 괜찮았다.

포천의 초겨울은 매서웠다. 텐트를 치고 화로에 불을 붙여 둘러앉았는데 등이 너무 추웠다. 아직 여섯 시도 안 됐는데 하늘에는 별이 떴다. 빛이 없어서 그렇다. 추워서 화로에 장작을 더 넣으면 고기가 새까맣게 탔고 땔감을 줄이면 손이 얼었다. 고기는 익을 줄 몰랐다. 몸에 열을 낼 심산으로 술을 잔뜩 마시고 르크루제 냄비를 화로에 올렸다. 감색 냄비는 순식간에 검은색이 됐다. 고작 라면을 끓이려던 것치곤 대가가 컸다. 추위에 떨고 술을 마셨더니 피곤이 몰려왔다. 홑이불보다 얇은 여름 침낭을 펴려는데 다음 날 아침은 영하라는 일기예보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춥고 졸리고 배가 고팠다. 야영이 아니라 노숙 같았다. 전방 지역 추위는 참기 힘들었다. 시계를 보니 겨우 아홉 시였다. 깜깜하고 추워서 너무 빨리 마신 탓이다. 이렇게 12시간이 지나야 아침이 된다니….

결국 우리는 캠핑장 밖으로 나가 전기장판을 사왔다. ‘눈이 올까?’ 기대했던 마음은 내일 아침 ‘눈을 뜰 수 있을까?’로 바뀌었다. ‘시원하다’라는 말만 듣고 뜨거운 물에 뛰어든 심정이었다. 캠핑의 꽃은 역시 겨울이구나…. 하긴 텐트 천정에 얼음꽃이 피어 있긴 했다.

꽃 같은 캠핑 아이템
얼어 죽지 않을 필수 캠핑 아이템을 모았다.
보온·보냉병 / 텐트 / 전기 연장선 / 바람과 눈을 막아줄 타프(TARP) / 냉기를 막아줄 매트 / 작게 접히는 의자 / 가스 등 / 다용도로 사용될 돗자리 / 밥을 먹을 수저(SPOON) / 캠핑의 조리 도구는 가위로 통일했다 / 코펠 / 작은 화로 / 가스 버너 / 화로 / 세면도구 / 침낭 / 필수 전기장판 / 접이식 상 / 아이스박스 / 주물 냄비 / 블루투스 스피커

가져가야 했을 아이템
① 타프 야외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다. 한낮에는 뙤약볕을 선사하더니 밤에는 바람이 불어댄다. 비도 바람도 햇볕도 막아줄 타프가 필요하다. ② 조리 도구는 챙겨도 수저를 빼놓는 경우가 많다. 모닥불에서 놀다 보면 태워 먹기도 많이 태워 먹는다. 슈퍼에 들러 나무젓가락이라도 많이 준비하도록. ③ 전기장판 전기장판이 없었다면 눈뜨지 못했을 수도 있다. 캠핑장을 뛰어 나가 사왔던 아이템이다. 부실한 동계 준비도 전기장판과 함께라면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