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5년 10월
글/최태형 사진/박남규

키보드 누르는 것 자체를 즐기게 해줄 기계식 키보드.

막 기자가 됐을 때 내 책상에 배정된 컴퓨터는 아마도 10년은 더 쓴 듯한 모습이었다. 여전히 윈도 XP와 익스플로러 6.0이 돌아가고 있었고 모니터는 아마 14인치를 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다.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고작 워드프로세서나 한글 프로그램이 다였으니까. 그런데도 참을 수 없었던 건 다름 아닌 키보드였다.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친 키보드는 14인치 모니터보다 더 답답했다. 키를 누르는 압력이 불규칙해 어떤 키는 너무 뻑뻑했고 어떤 키는 눌리는 느낌도 없이 제멋대로 입력되곤 했다. 한 줄 타이핑하는 데 두세 번은 백 스페이스 키를 눌러야 했고 그마저도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도통 글쓰기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글의 내용보다 들쑥날쑥한 키보드 입력을 신경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옆자리 여자 선배가 수줍게 손수건으로 덮어두는 키보드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피아노 건반 위에 빨간색 천을 덮듯 조심스럽게 다루던 키보드였다. 남자 친구의 선물임을 감안해도 키보드를 애지중지하는 여자라니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타이핑은 어찌나 시끄럽게 하던지… 남자 친구와 싸움이라도 했나 싶었다. 선배의 키보드가 미니 노트북과 맞먹는 가격이라는 걸 알고는 범접할 수 없는 오타쿠일 거라 확신하기도 했다.

물론 선배를 오타쿠로 본 것, 키보드에 히스테리 부린다고 생각한 건 기계식 키보드를 알기 전 나만의 오해였다.

기계식 키보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키보드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키보드가 문자를 입력하는 결과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기계식 키보드는 입력 과정을 중요시한다. 즉 키가 눌리는 느낌, 소리에 대한 저마다의 취향을 위해 키보드를 만든다. 우리가 흔히 쓰는 키보드는 대부분 멤브레인이라 부르는 방식이다. 키 밑에 얇은 고무 판이 있고, 키가 고무 판에 붙은 접점을 밀면 입력되는 방식이다. 이에 반해 기계식 키보드는 키 아래 기계식으로 만든 스위치가 있다. 스위치, 즉 축은 보편적으로 네 가지 색상(청색, 적색, 갈색, 흑색)으로 구분하는데 이 스위치는 기계식 구조가 달라 눌리는 압력과 소리도 달라진다. 키를 누를 때 확실하게 걸리는 느낌과 경쾌한 소리를 원한다면 청색 축이 있는 키보드를, 조용하고 묵직한 키의 느낌을 원한다면 흑색 축이 있는 키보드를 선택하면 된다. 키캡의 컬러를 자유롭게 바꿀 수도 있어 디자인 역시 직접 선택할 수 있다.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누르는 시간이 많다면 아마도 큰 차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글을 쓰는 과정을 즐기고 싶다면 기계식 키보드를 추천한다.

Topre | Realforce 87U

36만원 leopold.co.kr

Leopold | FC900R Standard PBT

12만9500원 leopold.co.kr

Skydigital | NKEYBOARD NKEY-K5 RGB

15만4000원 skyok.co.kr

PFU HHKB | Lite 2

3만9000원 leopold.co.kr

Topre | Realforce 104U

33만원 leopold.co.kr

Leopold | FC750R

12만7500원 leopold.co.kr

Logitech | G310 Atlas Dawn

13만8000원 logitech.com

Xenics | Tesoro Excalibur Spectrum

13만9000원 xenics.co.kr

Xenics | SCORPIUS M10TFL

10만9000원 xenics.co.kr

Skydigital | NKEYBOARD Mechanic LED

17만5000원 skyok.co.kr

[박스] 무접점 키보드

흔히 기계식 키보드로 뭉뚱그려 말하지만 무접점, 즉 접촉이 없이 입력을 수행하는 키보드가 있다. 무접점 키보드는 키가 기판에 닿아 입력되는 게 아니라 일정 압력이 넘어가면 입력되는 방식이다. 이 덕에 각 손가락이 닿는 영역의 입력값을 다르게 설정할 수 있다. 엄지와 검지 부분의 키는 강한 압력에, 새끼손가락 부분의 키는 약한 압력에 반응하도록 세팅하면 손에 무리를 주지 않고 입력할 수 있다. 키보드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리얼포스 키보드가 무접점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