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5년 9월
글/최태형 사진/PR
지난해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화제를 모은 〈카포네 트릴로지〉가 한국에서도 호텔의 문을 열었다. 〈카포네 트릴로지〉는 시카고를 배경으로 10년 단위로 벌어지는 세 가지 사건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은 연극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의 영향력이 시카고를 지배하던 1923년, 1934년, 1943년의 렉싱턴 호텔. 작고 음침한 방 661호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카포네 트릴로지〉는 ‘로키’, ‘루시퍼’, ‘빈디치’라는 제목의 세 가지 에피소드를 가지고 각각의 연극으로 만들었다. 세 편의 이야기는 서로 맞닿아 있는 듯하면서도 독립적으로 완결된다.
무대는 호텔 방 661호다. 객석 역시 같은 방 안에 있다. 관객은 호텔 방의 문을 열고 입장한다. 방문을 열면 마주 보이는 침대 좌우로 객석이 위치해 있다. 방문이 닫히면 관객은 영락없이 좁은 호텔 방에 숨어들어온 불청객이 된다. 방에 불이 꺼지고 금세 다시 밝아지면 닫힌 방문을 통해 배우가 등장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관객이 드나들던 문이 어느새 무대로 바뀌어 있다. 이제 무대와 관객, 배우가 하나가 돼 작은 방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향해 달려간다. 아무도 현장을 벗어날 수 없다. 그저 빠르거나 천천히 배우의 조율에 맞춰 웃다가 숨죽여 긴장하고 잔혹함을 맛본 후 호텔을 빠져나오는 수밖에 없다.
세 사건은 각각 코미디, 서스펜스, 하드보일드 장르를 띠며 전개된다. 첫 사건은 로키다. 전형적인 코미디 장르의 익살이 극을 채운다. 밤무대 롤라퀸인 여주인공은 올드맨과의 결혼을 하루 앞두고 자기가 일하는 호텔에 묵는다. 그녀는 결혼을 하루 앞둔 밤, 마지막으로 자신의 정부와 뜨거운 밤을 보내고 싶어 한다. 그녀의 정부가 카포네 조직의 하수인을 죽여 조직원들의 타깃이 된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예비 신랑의 눈을 피해 정부를 방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롤라퀸이 안도하는 사이 카포네 조직의 복수에 연루된다. 하룻밤 사이 그녀의 호텔 방을 거쳐간 인물들과 관계들이 급격하게 꼬이며 그녀의 삶이 틀어진다. 단 세 명의 배우가 초를 바꿔가며 20명가량의 인물을 입체적으로 연기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루시퍼. 루시퍼는 알 카포네가 탈세로 잡혀가고 난 후의 이야기다. 조직의 2인자인 닉 니티가 아내와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선택하는 위험한 결정들의 이야기다. 카포네는 없지만 카포네의 여파가 깃든 도시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2인자가 파국을 맞는다. 그의 아내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 한 여자다. 그러나 작은 렉싱턴 호텔 방 661호를 벗어날 수 없다. 조직 간의 싸움에 가장 먼저 타깃이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행복을 원하는 커플이 가질 수 있는 것은 고작 호텔 방만 한 안정이다. 카포네 조직의 2인자인 닉 니티는 도시를 모두 지배했지만 결국 작은 호텔 방에 갇힌 거나 다름없다. 닉이 부인 말리의 천사가 되려고 노력할수록 루시퍼와 같은 악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세 번째 이야기는 빈디치다. 사랑하는 아내를 죽인 상사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내용이다. 음침한 호텔 방에서 아내의 시체와 함께 지내며 복수를 꿈꾸는 남자. 그녀에게 다가온 상사의 딸 루시. 이들은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얽히고설킨다. 그 과정에서 세 남녀는 서로의 목적을 위해 배신을 거듭하며 반전을 만든다. 빈디치는 이 우울한 호텔 방에서 복수를 마치고 살아 나가는 게 목표다. 방을 떠나는 순간이 온다면 목적을 달성했다는 거다. 극은 선량한 남자가 매우 잔인하고 비정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그린다. 관객은 작은 호텔 방의 그림자 속에서 그 과정을 숨죽이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세 편의 이야기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극과 극 사이에 영향을 준다. 세 주인공 모두 이 작은 공간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벗어나려 할수록 더욱 옥죄여온다. 이 과정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관객은 움직일 수도 문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바로 1미터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웃고 싸우는 과정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각 에피소드는 단 세 명의 배우가 연기하지만 평면적이지 않다. 무대 곳곳에 마련된 트릭과 조명 효과, 그리고 필요할 때면 관객 사이에 난입하는 배우 덕이다. 단 세 명의 배우로 만들어냈다고 보기 힘든 입체적인 연출이 돋보인다. 공간 구성부터 배우의 동선, 애드리브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전개까지 삼박자가 완벽히 맞아떨어진다. 연극이기에 느낄 수 있는 현장의 카타르시스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극을 연출한 김태형 감독은 연극의 경쟁 상대는 다른 연극이 아니라고 말했다. TV 프로그램이나 영화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카포네 트릴로지〉의 밀도 높은 긴장이 세 편의 연극 모두를 장악하는 걸 보면 어떤 뜻인지 이해가 된다. 단연코 세 사건 모두의 목격자가 될 것을 권한다. 어떤 경험보다 생생한 긴장과 재미를 느낄 것이다. 당신의 코앞에 범인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