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4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랜드로버 디스커버리4에 대한 얘기다. D4 미션이 고장났다. 수리점에서는 별로 놀랍지도 않은 듯 심드렁하게 500만원을 예상했다. 나는 놀랐다. 이미 D4를 위해 300만원을 수리비로 썼기 때문이다. 앞 에어 쇼바 한쌍을 새 제품으로 바꿨고 연료 압력이 떨어지는 것을 고치기 위해 경유 라인을 교체했다. 여간 수고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엑셀레이터를 세게 밟으면 여지없이 경고등을 띄운다. 크하하. 뿐만 아니다 우측 뒷문은 잠기면 열리지 않고 열리면 잠기지 않는다(30여 만 원을 들여 고쳤다). 고집이 세다. 2011년 태어나 20만 킬로미터를 넘게 달린 랜드로버만의 똥고집.

뭘 어떻게 해도 아껴줄 걸 아는 것 같다.

버스 아저씨와 눈을 맞춰 인사 할 수 있는 높고 웅장한 포지션, 구름 위를 달리는 듯 물컹한 서스펜션, 기대도 안한 오리지널 토우바까지 볼드한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어서인지 뻔뻔하기 이를데 없다. 사실 돈만 있다면 미워할 일이 없긴하다. 어려운 정비는 랜드로버 특유의 구조로 극악 난의도를 자랑하지만 경정비는 오프로더 특성상 잡아 뽑고 돌리고 맞춰 끼우면 대부분 해결된다. 직선으로 뻗은 라인은 멋스러워 새로운 모델이 나올 수록 더욱 D4를 주목받게 한다.

내부 버튼도 그렇다. 직관적이고 크며 투박하다. 장갑을 끼고 산길을 오르면서도 보지 않고 누를 수 있다. 물론 그래본 적은 없다. 창문은 광활해 돌바닦에서도 지면과 바퀴, 차량의 자세를 정확한 시야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래본 적도 역시 없다. 그럼에도 조용하다. 20만 키로를 넘긴 경유 SUV가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창문을 열기 전까진 말이다.

유튜브, 온라인 어디를 봐도 문제 없는 D4를 찾긴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D4에 대한 동경을 찾는 것, 극찬을 찾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트렁크를 열어 카약을 실었다. 볼보 C30의 트렁크에는 들어가지 않아 힘들에 천장 가로바에 올려야 했는데 이제 광활한 트렁크가 쉽게 품는다. 내친김에 캠핑용 돌돌이(라 부르는 구루마라고도 하는 수레)까지 넣어버렸다. 한강으로 가기 전부터 지치게 하던 과정이 수월해졌다. 진흙밭에서 에리바 카라반을 쉽게 끌어 올릴 때처럼 말이다. 라이프스타일이 한결 간결해졌다(?) 그래 왜 너를 하랑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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